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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개 ===
[[파일:Frame house along Seikei-Sen.JPG|thumb|240px|일제강점기의 청계천]]
[[조선 총독부]]에서 제1기 하수도개수계획(1918~1924)을 수립하였고, 이때 세종로부터 마장철교까지 5.9&nbsp;km 구간과 배수가 불량한 17개의 지천을 개수하였다.<ref>《경성부사》 3권, p164</ref> 1925년 10월부터는 제2기 하수도개수계획이 수립되어 [[백운동천]]이 [[신교동]]부터 [[도렴동]]까지의 1395m1,395m 구간이 복개됨과 동시에 [[옥류동천]]·[[누각동천]]·[[사직동천]] 271m 구간이 복개되었고, 제3기 계획(1933~1936)과 제4기 계획(1937~1943) 또한 수립되었으나 진행 여부는 알 수 없다.<ref>《서울600년사》 3권, p417-419</ref>
 
1926년에는 남대문로1가 부근(광통교)에서 주교까지를 복개하여 [[유원지]]를 조성하는 계획이 발표되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26070100209202023&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26-07-01&officeId=00020&pageNo=2&printNo=2089&publishType=00020 청계천을이용하여 유원지를건설], 《동아일보》, 1936.07.01.</ref> 1935년에는 청계천을 모두 복개하여 도로와 고가철도를 건설하는 계획이 마련되었다.<ref>청계천 고가철도안, 《매일신보》, 1935.01.17.</ref> 1939년에는 청계천 위에 [[자동차]] 전용 도로를 건설하는 계획이 발표되었다.<ref>[청계천을 덮은 뒤에 자동차 전용도로로, 《조선일보》, 1939.08.21.</ref> 이듬해에는 청계천을 복개하여 지상에는 전차를 놓고 지하에는 지하철을 놓은놓는 방안이 나타나기도 하였다.<ref>[우로 전차, 밑에 지하철 - 대로로 변할 청계천, 《매일신보》, 1940.05.07.</ref>
 
실제로 복개는 위와 같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1937년 태평로에서 무교동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었고, 1955년에는 광통교 상류 135.8m 구간에서 암거공사가암거 공사가 진행되었다.<ref>{{서적 인용 |저자=서울특별시 홍보기획관 홍보담당관 |날짜=2006 |제목=청계천복원사업 백서 1 |위치=서울 |출판사=서울특별시 |쪽=27}}</ref> 광통교부터의 청계천은 1958년부터 1977년까지 복개되었고, 이때 [[청계고가도로]]가 놓였다.
 
=== 복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