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랜드 공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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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1967년]] [[9월 2일]] 원래 [[영국 육군]] 소령이었으며 해적방송의 운영자였던 [[패디 로이 베이츠]]가 당시 [[영국]]의 영해 밖에 존재하고 있던 이 요새에 독립선언을 발표하여 이 요새를 시랜드라고 이름짓고 자신도 로이 1세라고 명명하였다. 영국은 재판을 걸었으나, [[1968년]] [[11월 25일]]에 나온 판결에 의하면, 시랜드 공국이 위치한 [[러프 요새]]는 영국의 영해 밖에 존재하며, 주변국들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영국의 사법권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시랜드를 독립국가로 인정한 나라나 정부는 없으며, 국제적으로 시랜드 공국은 인정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이 국가는 여권, 화폐는 물론 축구 국가대표팀도 있다. 베이츠가 시랜드 공국을 선포한 이듬해인 [[1968년]] 영국 해군이 시랜드에 접근해 강제 퇴거를 시도했으나 베이츠가 경고 사격을 하는 등 강력히 대응하여 그냥 돌아갔다.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5&aid=0000005607& 팝뉴스 2007년 1월 8일자 10명 거주 가능한‘세계 최소 국가’“1200억 원에 팝니다”</ref>
 
[[1967년]]에 [[패디 로이 베이츠]]는 시랜드 공국을 독립국으로 선언하고 자신을 공작이라 칭하여 자신의 가족들과 시랜드 공국의 주민을 자처한 20여명의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러프 요새]]의 안에는 로이 1세의 가족밖에 없을 거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1년 후에 러프 요새의 근처를 지나던 [[영국 해군]]의 함정이 요새의 해상 벙커에서 많은 주민들을 발견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위협을 느낀, [[패디 로이 베이츠|로이 1세]]의 아들인 마이클 베이츠가 영국 해군의 함정에 총격을 가하였다. 당황한 [[영국 해군]]은 군사를 모아 시랜드 공국이 있는 [[러프 요새]]에 진입하고 강제로 로이 베이츠와 그의 가족 및 시랜드 공국의 주민들을 강제 퇴거시키려고 하였으나, 이에 대한 [[영국]] 법원은 '시랜드는 영국 영해 밖 공해상에 있기 때문에 영국의 사법권이 미칠 수 없다'<ref>당시 영해의 기준은 육지로부터 3해리까지를 영해로 인정하였으므로, 시랜드 공국의 건설 당시에는 [[러프 요새]]에 영국의 사법권이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현재는 육지로부터 12해리까지를 영해로 보므로, 현재는 엄연히 [[영국]]의 사법권 내에 있게 된다.</ref>라고 판결을 내리면서 [[영국 해군]]에게 회항하도록 하여 일단락내렸다일단 내렸다. 이렇게 시랜드 공국은 끈질기게 독립을 지켜내었다.
 
=== 외자의 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