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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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사에 의하면 비록 패했지만 이들이 죽기살기로 저항했기에 왜군도 수천여명이 죽을 정도로 피해가 커서 우두머리를 난도질했는데, 아들인 조극관을 우두머리로 알고 난도질을 했다고 한다 이들의 분전으로 왜군은 피해를 추스려야 했기에 호남 곡창 지대 방어에 큰 기여를 했다.
 
의병과 승병 모두 전사하고 일본군 역시 피해도 막대해 시체를 옮기는 데 3일이 걸렸으며 이후 700명의 시체들을 모아 금산에 '[[칠백의총]]' 이란 무덤을 만들었다.
 
== 결과 및 영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