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128번째 줄:
 
반면 부정적 평가도 많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자신의 저서에서 복원된 청계천을 "인공호수"라며 호되게 비판하였다.<ref>《직선들의 대한민국》, 우석훈</ref> 또한 기존에 흐르는 물의 양이 적어 취수장에서 전기를 이용해 한강물과 지하수를 끌어다 청계광장에서 흘려보내는데, 이때 물을 끌어올리는 데 쓰이는 전기요금이 한해 평균 8억 가량으로 상당하며<ref>[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A44&newsid=01420246596447688&DCD=&OutLnkChk=Y 청계천 물길 따라 해마다 80억원 증발] 강경지《이데일리》2011-11-20</ref> 녹조 또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2007 ~ 2009년까지 8000만원을 녹조제거를 위해 쓰였다. 이 외에도 인건비, 청소·경비용역비, 토목·조경시설 유지관리비 등에 2011년에만 80억여원이 소모되었다. 이는 2005년 37억에서 2010년 77억원에 이은 것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11년 6월 [[조선일보]]의 설문 조사에서 최악의 건축물 3위에 뽑혔는데, "청계천은 한국을 상징하는 공공 건축물인데 건축가도 없이 단기간에 불도저로 밀어붙이듯 만들었다"는 이유에서였다.<ref>[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6629&utm_source=twitterfeed&utm_medium=twitter 건축가들 "최악은 오세훈의 광화문광장, 3위는 MB 청계천"] 《뷰스앤뉴스》 2011년 6월</ref> 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자신의 임기 안에 청계천 복원 사업을 무리하게 끝마치기 위하여 유적 복원을 날림으로 진행했다는 평가도 있는데, 실제로 석축·효령교·하랑교·오간수문은 복원되지 않고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에 보관되고 있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85088 청계천 고가 밑 보물창고, 누가 파괴했나? '국보'를 쓰레기 취급한 MB, 참 특이합니다], 《오마이뉴스》, 12.01.20</ref> 또한 [[1773년]]에 쌓은 현 무교동 사거리에서 시작되며 청계천을 따라 17.1미터의 폭을 두고 양쪽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청계천 석축은 발굴 후 복원되지 못했다. 복원 당시 발견된 석축은 [[동아일보|동아일보사]] 앞의 좌안석축이 교차로를 기준으로 서쪽 57m, 동쪽 36m 정도, 반대편 우안석축은 9m 정도로 모두 100여 미터나 된다. 수표교는 예산상의 문제라는 표면적 이유로 장충단공원에 남아 있고, 광통교는 원래와 다르게 복원되었다. 청계천 입구에 위치하는 [[소라탑]] 또한 일각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은 [[스웨덴]] 출신의 미국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가 설계한 작품으로, KT가 34억의 비용을 들여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이다. 높이 20m, 폭 6m, 무게 9t이다. 일부에서는 한국적인 미가 결여되어 있고, 주변에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비판과 풍수지리학적으로도 좋지 못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ref>[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10230461 청계광장 스프링은 국운에 악영향 옮겨야] 《동아일보》 2008-10-23</ref>
 
====수상 내역====
 
청계천 복원사업
 
=== 복원 이후 ===
줄 139 ⟶ 135:
=== 과거의 다리 ===
조선 시대의 청계천의 다리 목록이다. [[백운동천]]의 신교부터 송기교까지의 다리는 해당 문서에 있다.
 
{{문화재 정보
* - : [[태평로1가]] 64번지 부근 [[광화문 우체국광화문우체국]] 남쪽에 있었으며, 서울지도에 표시만 되어 있고 이름은 적히지 않았다.<ref name="서울하천239">{{서적 인용 |저자=이상배 |날짜=2000 |제목=서울의 하천 |위치=서울 |출판사=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쪽=239 |isbn=9791160710182 }}</ref>
| 이름 = 서울 청계천 유적<br />서울 淸溪川 遺蹟<br /><small>(광통교지, 수표교지와 오간수문지)<br />(廣通橋地, 水標橋址와 五間水門址)
| 그림 =
| 그림설명 =
| 국가 = {{KOR}}
| 유형 =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 번호 = 461
| 지정 = [[2005년]] [[3월 25일]]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 270-1 외<br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남대문로 9 외
| 시대 = [[조선]]
| 소유 =
| 좌표 =
| 문화재청 = 13,04610000,11
}}
* - : [[태평로1가]] 64번지 부근 [[광화문 우체국]] 남쪽에 있었으며, 서울지도에 표시만 되어 있고 이름은 적히지 않았다.<ref name="서울하천239">{{서적 인용 |저자=이상배 |날짜=2000 |제목=서울의 하천 |위치=서울 |출판사=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쪽=239 |isbn=9791160710182 }}</ref>
* 모전교(毛廛橋) : 지금의 모전교 자리에 있었다. 우전다리(隅廛―) 또는 모교(毛橋)라고도 불렸으며, 1412년 태종 12년 석교로 개축한 이후 신화방동구교(神和坊洞口橋), 신화방동입구교(神和坊洞入口橋)라고 하다가 영조 때가 되어서야 모전교라고 불리게 되었다.<ref name="서울하천239"/>
* 광통교(廣通橋) : 지금의 광교 자리에 있었으며, [세종로|육조거리]]에서 [[숭례문]]으로 이어지는 도성 안 중심통로여서 옛 도성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던 다리이다. 대광통교(大廣通橋), 북광통교(北廣通橋), 대광교(大廣橋), 광교(廣橋) 등으로도 불렸다. 태조 때에 흙으로 축조되었다가 폭우로 인하여 무너지자 [[1410년]] (태종 10년) [[8월]]에 돌로 다시 축조하였다. 다시 축조했을 때 [[정릉 (신덕왕후)|정릉]]의 석물로 만들었는데, [[이성계]]가 자신의 왕위를 강씨의 소생인 [[방석]]에게 넘겨 주려 하니 이에 화가 난 [[태종]]이 [[왕자의 난|난]]을 일으켜 방석을 죽여 왕위에 올라 강씨의 묘를 옮기며 일부 돌들을 모두가 밟을 수 있게 옮겨 놓은 것이다. 또한 그 돌들은 모두 거꾸로 놓았고, 석교로 만들어진 이 다리가 가장 역사가 오래된 다리이다. 정월 대보름에 다리밝기 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해, 그 때 한양에서는 광통교가 가장 붐비었다고 한다.
줄 167 ⟶ 150:
 
=== 현재의 다리 ===
조선시대의 다리를 계승한 경우 '''굵은 글씨'''로 표시했다표시하였다.
 
* '''모전교''' : [[파일:Cheonggyecheon-mogeonBridge.jpg|thumb|240px|첫 번째 다리 모전교]] 청계천에서 처음 만날 수 있는 다리로, [[무교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줄 196 ⟶ 179:
* 사근인도교 : [[용답역]]의 2번 출구로, 청계천 건너의 사근동과 용답동을 잇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 세월교 : 청계천이 중랑천과 합류하기 직전 지점에 위치한 성동구 사근동과 용답동을 잇는 자전거와 보도용 다리이다. (상류의 세월교와는 다르다.)
 
== 서울 청계천 유적 ==
{{문화재 정보
| 이름 = 서울 청계천 유적<br />서울 淸溪川 遺蹟<br /><small>(광통교지, 수표교지와 오간수문지)<br />(廣通橋地, 水標橋址와 五間水門址)
| 그림 =
| 그림설명 =
| 국가 = {{KOR}}
| 유형 = [[대한민국의 사적|사적]]
| 번호 = 461
| 지정 = [[2005년]] [[3월 25일]]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철동]] 270-1 외<br />서울특별시 [[중구 (서울특별시)|중구]] 남대문로 9 외
| 시대 = [[조선]]
| 소유 =
| 좌표 =
| 문화재청 = 13,04610000,11
}}
'''서울 청계천 유적'''은 광통교, 수표교, 오간수문이 있던 터와, 광통교, 하랑교, 효경교, 오간수문, 양안석축 등의 유구 일체를 의미한다. 발굴 이후 10년 넘게 중랑물재생센터(옛 중랑하수처리장)에 방치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청계천 다리 유구’ 10년째 노천에 방치 |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9230600035&code=960201 |뉴스=경향신문 |저자=조형국 |날짜=2013-09-23 |확인날짜=2016-12-11 }}</ref>
 
==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