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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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교(新橋) : 입정동 201·211번지 북쪽, 장사동 250번지 남쪽, 창덕궁과 남산의 [[조선신궁]](옛 조선총독부)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길 위에 있었다.<ref name="서울하천244"/> 1900년대 이후 청계천을 개수하며 콘크리트로 가장 먼저 바뀌었다.<ref name="서울하천244"/>
* 효경교(孝經橋) : 장사동 아세아전자상가 남쪽에 있었으며<ref name="041117한겨레"/>, 영풍교(永豊橋), 소경다리, 새경다리<ref name="서울하천244"/>, 효경다리, 효교(孝橋)라고도 하였다.<ref name="서울하천245">{{서적 인용 |저자=이상배 |날짜=2000 |제목=서울의 하천 |위치=서울 |출판사=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쪽=245 |isbn=9791160710182 }}</ref> 다리 밑에 거지가 많이 살아 음력 12월에 임금이 거지들을 살폈다고 하며, 영조 때에 [[금위영]] 군사들이 한 차례 보수한 뒤 근대에 와서는 다리의 양 끝을 콘크리트로 늘렸다.<ref name="041117한겨레"/> 청계천 복개 때 철거되었다.
* 태평교(太平橋) : 지금의 마전교 자리에 있었다. 태종 때는 창선방교(彰善坊橋), 성종 때는 태평교라 하였고, 순조 이후로는 태평교와 마전교 이름을 혼용하였다.<ref name="서울하천245"/> 오교(午橋), 오굣다리라고도 불렸으며, 다리 부근에 마전(馬廛)이 있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ref name="서울하천245"/>
* 오간수교(五間水橋) : 오간수문 위로 통행을 편하게 하기 위해 가설한 다리이다. [[1907년]] 일제가 오간수문을 헐어버린 뒤로 콘크리트 다리로 바뀌었다가 사라졌다.
* 영도교(永渡橋) : [[조선 성종]] 때 승려가 놓았다고 전한다. 영미교(永尾橋), 영이별교(永離別橋), 영영교(永永橋)라고도 불렸다. [[흥인지문]] 밖에 있는 [[동관왕묘|동묘]](東廟)와 왕십리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대한제국 고종|고종]] 초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헐어다가 석재로 사용하였으며, 일제강점기 콘크리트 다리로 개축되었다. 현재 [[성동공업고등학교|성동기계공고]] 옆 영미교길 부근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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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교 : 광교와 광통교 사이에 있는 하천 내부 보도용 다리이다.
* 광교 : 조선시대 광통교 터에 위치하며, 주황색으로 칠해졌다. [[우정국로]]와 [[남대문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 '''장통교''' : 도보 전용 다리로, 조선 시대의 장통교를 계승했으나 제대로 복원되지는 않았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관철교였다.<ref name="cw186청계백서186">{{서적 인용 |저자=서울특별시 홍보기획관 홍보담당관 |날짜=2006 |제목=청계천복원사업 백서 1 |위치=서울 |출판사=서울특별시 |쪽=186}}</ref>
* 삼일교 : [[삼일대로]]를 남북으로 잇기 때문에 삼일교라고 이름 붙였다.
* '''수표교''' : [[장충단공원]]에 옮겨진 옛 수표교를 옮길 자리에 도보를 위해 임시로 지은 철제 다리이다. 하지만 기존의 수표교를 청계천으로 다시 옮겨오는 데에 문제가 많아 계속 사용된다.
* 관수교 : 관수란 수위를 관찰한다는 의미며, 옛 준천사에서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돈화문로]]와 [[충무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 세운교 : [[세운상가]]와 연결된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 배오개다리 : 옛날 배나무가 심어져 있어 이름이 유래된 배오개(배고개)가 인근에 있어 그 이름을 땄다. [[창경궁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배오개교였다.<ref name="cw186청계백서186" />
* 새벽다리 : 옛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천막의 이미지를 막구조로 적용하여 동대문 재래시장의 역사성과 향수를 연출하였다. 근처 재래시장에서 이른 새벽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이름을 지었다.
* '''마전교''' : 부근에 우마를 팔고사는 마전이 조선시대에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붙였다. [[동호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창선방교였다.<ref name="cw186청계백서186" />
* 나래교 : 평화시장 앞에 위치한 다리로, 나비의 힘찬 날개짓을 형상화 해서 동대문 의류 상권이 비상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나래1교였다.<ref name="cw186청계백서186" />
* 전태일다리(버들다리) : 청계천에 자라는 버들에서 이름이 유래했으며, 이 다리 근처에서 분신하여 노동권 보장에 헌신한 [[전태일]] 열사를 기리기 위하여 2012년 11월 1일부터 명칭을 병용하고 있다.<ref>{{뉴스 인용 |제목=평화시장 앞 청계천 '전태일 다리 명명식'…"제2의 전태일 없어야" |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0040056 |뉴스=뉴스1 |저자=김영신 |날짜=2012-11-01 |확인날짜=2016-12-11 }}</ref>
* '''오간수교''' : 조선시대에 있던 오간수문에서 이름이 유래했으며, [[율곡로]]와 [[장충단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 맑은내다리 : 인도 전용 다리로, 청계천을 순우리말로 바꿔 청계천을 상징할 수 있는 명칭으로 결정했다. 패션 중심의 상징성을 주기 위해 나비가 날개를 편 모습으로 지어졌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나래2교였다.<ref name="cw186청계백서186" />
* 다산교 : 다산로에서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지봉로]]와 [[다산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푸른내다리였다.<ref name="cw186청계백서186" />
* '''영도교''' : 전통 대청양식을 도입한 아치교이다.
* 황학교 : [[황학동]]에 위치한 것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으며, [[난계로 (서울)|난계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 비우당교 : 조선 세종 때 청백리인 하정 [[유관]]의 집인 [[창신동#유적|비우당]](庇雨堂)을 이름으로 삼았으며, [[하정로]]와 [[마장로|마장로19길]]을 남북으로 잇는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비우교였다.<ref name="cw186청계백서186" />
* 무학교 : [[무학로]]를 남북으로 이으며, 무학로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 두물다리 : [[정릉천]]이 청계천과 만나는 데서 이름을 지었으며, 다리의 모양도 두 개의 물이 만나는 형상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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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교 : 청계천이 중랑천과 합류하기 직전 지점에 위치한 성동구 사근동과 용답동을 잇는 자전거와 보도용 다리이다. (상류의 세월교와는 다르다.)
 
=== 서울 청계천 유적 ===
{{문화재 정보
| 이름 = 서울 청계천 유적<br />서울 淸溪川 遺蹟<br /><small>(광통교지, 수표교지와 오간수문지)<br />(廣通橋地, 水標橋址와 五間水門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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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각주|2}}
<references/>
 
== 바깥 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