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의 키프로스 침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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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프로스]]는 [[1570년]]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어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1878년 [[베를린 회의 (1878년)|베를린 회의]]의 결과 [[영국]]에게 조차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오스만 제국이 [[동맹국]]으로 참전하자 적국이었던 영국은 1914년 11월 5일 키프로스의 완전 합병을 선언한다. 이는 오스만 제국이 몰락한 후 후계 국가인 [[터키 공화국]]이 체결한 [[로잔 조약]]에서 재확인된다. 이로써 영국이 키프로스의 통치권을 이양받는다. [[1960년]]에 [[취리히 및 런던 협정]]에 의해 키프로스는 독립하지만, 민족간의 갈등으로 [[국제 연합]]군이 주둔하는 등 [[분쟁]]이 심화되었다. 그러던 중 [[1974년]] [[그리스 군사 정권]]이 그리스와 키프로스를 병합하기 위하여 [[쿠데타]]를 일으키자 이에 불안을 느낀 [[터키]]가 [[영국]]에 같이 개입해줄 것을 요구하지만 실현되지 않는다. 이에 터키는 [[미국]]과 [[나토]]의 지원을 받으면서 터키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키프로스]]를 침공하고 [[북키프로스]] 정권이 수립되면서 사실상 키프로스 섬은 두 정권으로 분단되고 말았다.
 
== 바로샤 ==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할리우드]] 스타들도 자주 방문하던 휴양지 [[바로샤]]는 [[파마구스타 구]]에 속해 있었는데, 터키의 침공 이후 북키프로스에 소속되게 된다. 그러나 경계와 바로 맞닿아 위험성이 제기되었고, 터키군의 군사기지가 되면서 현재는 유령도시로 전락하였다.
 
최근 북키프로스 정권이 바로샤를 재개발하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나, 현재까지는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분류:1974년 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