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잉글랜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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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블루아 백작 에티엔과 아델라(윌리엄 1세의 딸) 사이에서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에티엔이 제 1차 [[십자군]] 원정 중 세상을 떠나자 외삼촌이 되는 [[헨리 1세]]에게 양육되었고, 얼마후 잉글랜드, 노르망디, 블루아 지역의 광대한 영토를 상속받았다. 형제들로는 상파뉴 백작 시어볼드, 윈체스터 주교 블루아의 헨리, 쉴리의 윌리엄 등과 4명의 여동생이 있었다고 한다.
1106년에 헨리 잉글랜드로 건너간 그는 1115년에 [[모르탱]]의 백작으로 봉해졌고 부르고뉴
== 내전 이전 ==
헨리 1세는 생전에 그의 유일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틸다의 승계는 불투명하기만 하였다. 우선 그녀는 귀족들에게 인기가 형편없었는데, 이는 여왕의 선례가 없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그의
헨리는 마틸다에 대한 지지를 강제하며 스티븐에게 그러한 맹세를 앞장서서 이행할 책임을 서약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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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141년 4월 마틸다는 윈체스터에서 열린 성직자 회의에서 ''잉글랜드의 레이디(Lady of England)''로 선출되었으며 왕위를 회복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6월 대관식을 위해 런던으로 온 그녀는 국민들앞에서의 거만한 행동과 귀족들에게 거금을 요구한 것 등으로 시민들과 귀족들의 분노를 가져왔고, 신변의 위협마저 느끼자 옥스퍼드로 도망쳤다. 이때 스티븐의 아내 마틸다는 추격대를 구성하여 뒤를 쫓았는데 마틸다의 가장 중요한
로버트와 스티븐을 교환하는 협정으로 유폐에서 풀려난 스티븐은 다시금 세력을 규합하여 1141년 9월 윈체스터에서 벌어진 회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1142년 본거지였던 옥스퍼드에서 포위된 마틸다는 그해 12월 몇명의 가신들만을 거느린채 노르망디로 도주하였다.
1147년 마틸다의 아들이자 훗날 [[헨리 2세]]로 등극하는 헨리는 어머니를 돕기로 결정하고 용병들로 부대를 구성하여 잉글랜드로 침공한다. 1차 침공은 준비부족으로 실패하였으나, 1153년 1월에 다시금 잉글랜드를 침략하였고 스티븐과 윌링포드 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이는 헨리에게 차기 왕위계승자의 권리를 준다는
== 내전 이후 ==
마틸다를 몰아낸 뒤 스티븐은 그의 왕좌를 죽을때까지 지켰다. 그는 자신의 후계를 총애하던 서장자 외스타슈에게 물려줄
스티븐에게는 정실 소생 자녀가 없었으므로 결국 헨리의 조건을 수용하게 되었다. 이후, 스티븐은 [[켄트 주]]의 도버에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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