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1세 (독일):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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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글 영어판 분류 정보를 이용.+분류:13세기 오스트리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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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2 = 1278년 8월 26일 - 1282년 12월 27일
|대관식2 =
|전임자2 = [[오토카르오타카르 2세]]
|후임자2 = [[알브레히트 1세 (독일)|알브레히트 1세]]
|작위3 = 케른텐 공작
|재위3 = 1278년 8월 26일 - 1286년 2월 1일
|대관식3 =
|전임자3 = [[오토카르오타카르 2세]]
|후임자3 = 괴르츠-티롤 백작 마인하르트 2세
|별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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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호엔슈타우펜 왕조]]가 몰락하고 제국이 [[신성 로마 제국#공위 시대|공위 시대]]에 접어들었다. 또한 당시 [[슈바벤 공국]]은 공중분해되어 여러 작은 귀족령으로 갈라져 있었다. 루돌프는 이 기회를 이용해 아내의 호엔베르크 영지, 외삼촌의 퀴부르크 영지를 획득하고, 슈트라스부르크 주교령 과 [[바젤]] 등의 영지를 구입하여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로서 루돌프는 제국 남서부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으로 떠올랐다.
 
1273년 독일 왕 [[콘월의 리처드]]가 죽고 다음 왕을 선출하기 위한 회의가 열렸다. 루돌프 1세는 친구인 뉘른베르크 백작 프리드리히 3세의 도움을 받는 한편, 반대파인 작센 공작 알브레히트 2세와 팔츠 선제후 루트비히 2세에게는 자신의 딸들을 약혼시켜 매수했다. 이로서 루돌프의 반대자는 [[슈바벤의 필립]]의 외손자인 [[보헤미아의 오토카르[[오타카르 2세]]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루돌프는 7표의 만장일치를 얻어 독일 왕 루돌프 1세로 선출되었다.
 
독일 왕이 신성 로마 황제로 즉위하기 위해서는 교황의 주관으로 대관식을 치러야 했다. 루돌프는 로마를 포함한 [[교황령]]과 [[시칠리아]] 섬에 대한 모든 권리를 교황에게 넘겨주고 [[십자군]] 원정을 약속했다. [[교황 그레고리오 10세]]는 그 보답으로 루돌프 1세를 승인하고, [[카스티야 연합 왕국|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슈바벤의 필립]]의 또다른 손자)에게도 루돌프 1세를 승인할 것을 강요했다.
 
1274년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제국 회의에서 프리드리히 2세가 갖고 있던 황제 직할령을 모두 돌려주는 법안이 의결되었다. 그러나 오토카르오타카르 2세는 바벤베르크 출신의 아내를 통해 얻은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등의 공작령을 넘겨주는 것을 거부했다. 루돌프 1세는 바벤베르크 가문에 남자 후계자가 끊어졌음을 들어 오토카르오타카르 2세에게 영지의 상속권이 없음을 선언했고, 1276년 그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루돌프는 오토카르의오타카르의 동맹이었던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9세를 설득하여 동맹을 맺었다. 전쟁에 패한 오토카르오타카르 2세는 오스트리아와 슈파이어마르크 그리고 케른텐을 루돌프에게 넘겨주었다. 루돌프는 오토카르와오타카르와 화해하기 위해 그를 보헤미아의 왕으로 재임명하고 자신의 딸을 오토카르의오타카르의 아들과 약혼시켰다. 그러나 오토카르는오타카르는 루돌프가 협약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폴란드와 독일의 일부 귀족들, 그리고 옛 동맹인 하인리히 9세와 다시 동맹을 맺어 루돌프를 공격했다. 이에 맞선 루돌프는 헝가리와 동맹을 맺어 오토카르와오타카르와 전쟁을 벌였다. 오토카르오타카르 2세는 1278년 전사했다.
 
오스트리아와 주변 영지를 획득한 루돌프는 오스트리아와 슈타이어마르크를 각각 두 아들 [[알브레히트 1세 (독일)|알브레히트]]와 [[루돌프 2세 (오스트리아)|루돌프 2세]]에게 상속시켜, 두 공국을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영지의 귀족들이 저항했으나 루돌프는 힘으로 이를 억눌렀다. 또한 아들 알브레히트를 [[콘라딘]]의 죽음 이후 이름뿐인 작위가 된 [[슈바벤 공국|슈바벤 공작]]에 앉혔다.
 
신성 로마 제국의 제후들은 루돌프가 획득한 모든 영지를 합스부르크 가가 전부 소유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동맹들에게 보상하기 위해 루돌프는 오토카르에게서오타카르에게서 빼앗은 케른텐 공국을 알브레히트의 장인 마인하르트 백작에게 봉했다.
 
1291년에는 아들 알브레히트를 독일 왕에 즉위시키려 했으나,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나치게 강력해지는 것을 경계한 선제후들의 반대로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