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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월]] 부인 양씨의 장례식을 치룬 뒤 그는 제자들과 친지들에게 "내가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 과일나무 밑에 묻어 거름이나 되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 사후 ===
*제자들에 의해 홍천군 서면 모곡리 모곡 점말 앞산 선영하에 제자들과 지역유지들에 의해 장례식이 거행된 뒤 안장되었으며 묘소 근처에 특별히 [[신도비]]가 세워졌다. 해방 후 [[1966년]] [[강원도]] [[홍천군]] [[서면 (홍천군)|서면]] 모곡리 468-1번지 산 큰말교회 뒤편으로 이장되었으며, 성역화되었다.
*[[1962년]] [[3월 1일]]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고 [[1977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그해 [[강원도]] 도민들의 성금과 정부의 지원하에 유리봉 근처로 다시 이장하고 성역화하였다.
 
*그뒤 [[홍천군]] [[서면 (홍천군)|서면]] 모곡리 387번지에 [[한서 남궁억 기념관]]이 세워졌고, 묘소 앞에 있던 [[신도비]]는 [[2009년]] [[8월 15일]] [[한서 남궁억 기념관]] 경내 공원으로 이전되었다.
 
== 저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