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카라 시리아 정교회: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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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앞으로 우리는 대주교 프란시스 가르시아와 바울주의자(성 바오로 신학교 고아 출신의 예수회 사제)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이며 예수회를 말랑카라 또는 교회에 다시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밧줄을 들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가 조금 구부러져 쿠넨(Coonen) 십자가(구부러진 십자가)의 맹세라고 알려져 있다. 그들은 적극적인 포르투갈의 국왕의 지배와 싸우고 교회의 정신적, 행정적 자율성을 회복하기를 원했다. 그리하여 1653년 5월 22일에 알랑가드(Alangad) 성 마리아 성당에서 12명의 노인 사제들이 토마스 대주교에게 손을 뻗어 수도권으로대도시권으로 승격시켰고 그를 메트로폴리탄 마르 토마 1세라고1세(Mar Thoma I)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라틴 교회의 침입으로부터 신앙을 지키기 위해 여러 동부 기독교 교회에 호소했다. 예루살렘의 그레고리오(Mar Gregorios)는 그와 함께 교회를 조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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