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비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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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객관성과 비판적 논의 측면에서 [[투키디데스]]의 후계자로, 그리고 근대 과학의 맥락에서 학문적이고 성실한 역사 연구의 선구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이런 평가에 따르자면 그의 저작은 명확한 사건 전개, 통찰력, 건전한 판단을 중시하며, 특정한 결과에 영향을 주는 조건 중에서도 특히 지리적 요소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하여 폴리비오스는 고대의 역사 서술의 최고라 할 수 있다. 《옥스퍼드 고전 문학 안내서》(''Oxford Companion to Classical Literature'', 1937년)의 저자는 그의 '성실한 진실 추구'와 사건의 원인에 대한 체계적인 탐구를 높이 평가했다.
 
최근 폴리비오스의 서술은 좀 더 비판적인 평가를 받는다. [[영국]]의 역사학자인 [[피터 그린 (역사학자)|피터 그린]]은 그가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과 아버지의 행적을 정당화하려 한다고 본다. 그는 자의적으로 아카이아 정치가 [[칼리크라테스]]를 부정적으로 묘사하여 독자로 하여금 칼리크라테스가 로마에 인질로 끌려간 것은 자신이 자초했다고 의심케 만들었다는 것이다.<ref>Peter Green, Alexander to Actium</ref> 더 근본적으로 볼 때 폴리비오스는 로마에 인질로 가서 스키피오 가문의 [[피호 제도|피호민]]이었고 기원전 146년 이후에는 로마에 협력한만큼 자신의 참된 의견을 제시하기에 자유롭지 못했다. 그린은 폴리비오스가 그리스 독자에게 로마에 대해 설명하여 그가 불가피하게 생각했던 로마의 지배에 순응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린의 입장에서도 폴리비오스의 역사서는 귀중한 가치가 있고, 그가 다룬 시대를 다룬 최고의 사료이다. [[론 멜러]]도 폴리비오스가 스키피오에 대한 충성 때문에 편향적이고 스키피오의 정적을 비방하고 있다고 본다.<ref>The Historians of Ancient Rome, Ron Mellor</ref> 영국의 저자 [[애드리언 골드워시]]도 스키피오가 장군이던 시기에 폴리비오스의 사료를 이용할 때 두 사람의 관계를 늘 언급한다.
 
폴리비오스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적대적이기도 했다. 가령 그는 [[크레테]]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보이고 있다.<ref>Mogens Herman Han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