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왕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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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왕후'''(文明王后, ? ~ 681)는 [[신라]] [[태종무열왕]]의 왕후로, 이름은 문희(文姬), 아명은 아지(阿之)이며, 본관은 [[김해 김씨|김해]]이다. 소판(蘇判) [[김서현]](金舒玄)의 차녀로, [[김유신]]의 둘째누이이다.
== 설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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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뒤 [[김유신]]의 집에 놀러온 [[김춘추]]가 공을 차고 놀다가 옷끈이 떨어졌다. [[김유신]]이 보희를 불러 옷을 꿰매라 시켰는데, [[김보희]]가 이를 마다하였고, 김문희가 대신 나와 옷끈을 꿰매었다. [[김춘추]]는 김문희의 빼어난 미모를 보고 마음이 끌려 그 뒤로 자주 [[김유신]]의 집에 들르게 되었고, 김문희는 [[김춘추]]의 아이를 회임하였다. [[김유신]]은 결혼 전의 처녀가 아이를 배었다고 꾸짖고 주위 사람들에게 일부러 누이를 죽이겠다는 소문을 내었다.
얼마 뒤 [[선덕여왕]]이 궁을 나와 남산으로 나들이 행차를 하게 되었는데, [[김유신]]이 여왕의 행차를 기다려 장작더미에 불을 붙였다.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놀란 여왕이 무슨 일인지를 묻자 신하들이 [[김유신]]의 누이가 처녀의 몸으로 임신을 하여 태워죽이려 한다고 고하였다. [[선덕여왕]]이 그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자 듣고 있던 [[김춘추]]의 안색이 변했다. 사정을 짐작한 [[선덕여왕]]은 [[김춘추]]에게 김문희를 구하라고 하였고, [[김춘추]]는 말을 타고 달려가 왕명을 전하고 그녀와 혼인하였다.
== 화랑세기 기록상 태종무열왕 사후의 문명왕후 ==
필사본 《[[화랑세기]]》에 의하면, 그녀는 남편인 [[태종무열왕]] 사후 아들인 [[문무왕]] 재위기간 시 사생아인 [[선원전군]]을 낳았다고 전한다. 이는 과부가 된 그녀가 다른 남성과 사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김흠돌]]의 딸인 [[폐비 김씨]]를 [[신문왕]]의 태자비로 삼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김흠돌]]의 난이 문명왕후 사망 후 자신의 죄를 알고 불안해 하다가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되어 있어 [[
== 가족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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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개소문 (드라마)|연개소문]]》([[KBS]], [[2006년]] ~ [[2007년]] 배우:[[이매리]], 전혜상, 배나연)
* 《[[대왕의 꿈]]》([[KBS]], [[2012년]] ~ [[2013년]] 배우:[[린아]])
==참고 문헌==
*[[일연]], 《삼국유사》 (1281) [[:s:삼국유사/권제1#태종춘추공(大宗春秋公)|〈기이〉 태종춘추공(大宗春秋公)條]]
[[분류:생몰년 미상]]
[[분류:7세기 한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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