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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타고는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기원전 3세기 전반까지 서(西)지중해에서 최대의 세력을 떨쳤으며, 무역으로 번영하였는데 특히 상업귀족의 세력이 매우 강대하였다.
 
카르타고는 지중해 연안의 풍부한 광물 자원을 장악했다. 사르데냐는 광물 자원이 물량으로는 적었으나, [[납]], [[아연]], [[구리]], 철, [[은]] 등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히스파니아 광산은 매장량이 보다 풍부했고, 250년간 계속 채굴했지만 여전히 납, 아연, [[수은]], 구리, [[금]], 은과 수백만 톤의 [[철광석]]을 생산했다. 히스파니아의 [[카디스|가데스]]를 떠난 카르타고인들은 아마 오래전의 페니키아인들이 한 것처럼, 북쪽 [[콘월]]로 항해하여 값진 [[주석 (광물원소)|주석]]을 배에 싣고 오기도 했다. 이 곳을 거점으로 남쪽으로 아프리카 해안 방향으로 [[황금 해안]], [[카메룬]], 심지어 [[가봉]]까지 갔으며 그곳에서 금, [[상아]], [[노예]], 전쟁용 코끼리를 실어왔다. 카르타고에서 생산한 많은 광물은 본국 주물 공장뿐 아니라 동부 지중해의 [[헬레니즘]] 세계로 운송되었다. [[제1차 포에니 전쟁]] 전 수세기 동안 동쪽과 서쪽을 잇는 해운업은 사실상 카르타고가 독점했다. 지중해 서부에서 [[고대 그리스|그리스]] 선박이 발견되면 십중팔구는 격침되었다. 이런 정책 덕분에 카르타고 상인들은 그 지역 내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한 상품들을 독점으로 판매할 수 있었다. 카르타고의 제품 중 자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제품은 직물, 특히 자주색으로 염색 가공한 직물뿐이었다. 카르타고 산 직물은 지중해 세계 전역에서 호평을 받았다.<ref>M 하이켈하임, pp.171~172.</ref>
 
카르타고인은 과학적 영농에 특히 노예들을 이용한 집단 농장([[플랜테이션]])의 발달에 이바지했다. 로마인들은 이들에게서 대규모 노예 노동력을 이용하여 판매용 단일 곡물이나 단일 산물을 재배하는 기법을 배웠다.<ref>M 하이켈하임, p.172. 146년 카르타고가 멸망한 직후, 로마 [[원로원]]은 틀림없이 이탈리아의 부유한 지주들이 활용할 용도로 [[마고]](Mago)가 카르타고의 농업에 관해서 쓴 32권의 고전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도록 지시했다. - 마고의 저서는 로마인들으 보존하고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카르타고 문헌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저서가 후기 로마의 농업 관련 저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아울러 그 영향력은 중세 [[에스파냐]]의 [[무어인]]과 아마 에스파냐인에게도 간접적으로 전달되었다. 에스파냐인들은 [[신세계]]에서 노예 노동력을 이용한 플랜테이션 농업을 뿌리내렸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