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독립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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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2세는 네덜란드에 신뢰할 수 있는 확고한 정부를 세우기 위해 네덜란드 17주의 상급 귀족으로 하여금 [[네덜란드 의회]]를 구성하게 하고 수장으로 그란베일을 임명하였다. 후일 펠레페 2세는 카를 5세의 서녀였던 [[파르마의 마르가레테]]를 [[총독]]으로 임명하였다.<ref name=autogenerated1 /> 그럼에도 불구하고 [[1558년]] 네덜란드에서는 스페인 군대의 철수와 높은 세금의 감면에 대한 요구가 쏟아져 나왔으며 상위 귀족들로 구성된 [[의회]]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펠리페 2세에게 직접 탄원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청원은 하급 귀족들이 중심이 되었으나 상급 귀족 중에도 이들의 청원에 가담한 사람들이 있었다. [[에그몬트 백작 라모랄]], [[흄 백작]], [[오라녜공 빌렘 1세]]<ref> 오라녜공이자 나사우 백작인 [[빌럼 1세|빌렘 1세]]는 후일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가 된 윌리엄의 선조이다. 빌렘은 윌리엄의 네덜란드식 발음이다</ref> 등은 의원직을 사퇴하고 펠리페 2세가 그란베일을 스페인으로 소환할 것을 요구하였다.<ref> Pieter (2001).</ref> [[1564년]] 말, 귀족들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반란]]이 일어날 것임을 경고하였으나 펠리페 2세의 대답은 오직 억압뿐이었다. 위의 세 명은 다시 한번 의원직을 사퇴하고 일견 복종하는 듯하였다. 그 기간 동안 네덜란드에서는 [[로마 가톨릭]]의 [[개신교]] 박해를 반대하는 여론이 확산되었다.
 
[[1566년]] 하급 귀족 400명이 서명한 청원서가 펠리페 2세에게 전달되었다. 펠리페총독 2세는마르가르타의 참모중 한명이 이들을 "[[괴젠]]"이라 표현하였는데 이는 "거지"를 뜻하는 말이다. 그들의 탄원이 일정정도 받아들여지자 하급 귀족들은 "괴젠"이란 모욕적인 칭호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 성상파괴와 압제 (156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