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삼국지):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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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활동= [[익주]]에서 독자 세력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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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劉焉, ? ~ [[194년]])은 [[중국]] [[후한]] 말의말기의 [[정치가]]로관료로, [[자 (이름)|자]]는 '''군랑'''(君郞)이며 [[형주]] [[강하군]] 경릉현(竟陵縣) [[사람]]이다. [[전한]] [[전한 경제|경제]]의황실의 후손으로 중신 반열에 올랐다. 후한 말의 혼란 속에서 [[자사 (관직)|주목]]의 영향력을 강화할 것을 건의하였고 스스로 [[익주]]로 부임해서는 독자 세력을 구축하였다. [[이각 (후한)|이각]]·[[곽사]]·[[번조]] 연립 정권의 축출도 기도했지만 실패하였다.
 
== 생애 ==
=== 황실 성씨로서 ===
유언의 조상은 [[전한]] [[전한 경제|경제]]의 [[아들]] 노공왕(魯恭王) [[유여 (사람노공왕)|유여노공왕]]의 후손으로, 선조가 [[원화 (후한)|원화]] 연간에 [[강하군]] 경릉현으로경릉으로 이주하였다. 젊은 [[나이]]부터 [[주 (행정 구역)|주]][[군 (행정 구역)|군]]에서 관리로 근무하였고, 종실인지라 중랑(中郞) 혹은 낭중<ref>《삼국지》 유언전은 중랑, 《후한서》 유언전은 낭중</ref>으로도 일하였다. [[160년]]([[연희 (후한)|연희]] 3년)<ref>《후한서》7권 본기 제7 [[효환제]] 유지 연희 3년</ref> 스승 [[축념축염]]<ref>[[배송지]] 주석, 《삼국지》31권 촉서 제1 유언</ref>이 죽자 관직을 떠나 [[영천군 (중국)|영천군영천]]의 양성산(陽城山)에서 [[학문]]을 닦았다. 이후 [[사도 (관직)|사도]]부(司徒府)에 현량방정(賢良方正)으로 추천됐으며 [[낙양]][[현령]], [[기주]][[자사 (관직)|자사]], [[남양군 (중국)|남양]][[태수]], [[종정 (관직)|종정]](宗正)을 거쳐 [[태상 (관직)|태상]]까지 올랐다.
 
=== 야망을 숨긴 채 입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