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포티오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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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포티오스는 당시 [[동로마 제국]]을 대표하는 학자였다. 그는 [[7세기]]의 전란으로 소실되어 버린 [[고대 그리스]] 문헌의 수집에 노력하고, [[콘스탄티노플]]에 있던 제국 대학 철학과 교수도 역임했다. 포티오스는 고대 그리스의 고전에 대해 매우 조예가 깊었다. 이구나티오스 파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지식을 얻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비난할 정도로 그 박식함만은 정적 이구나티오스 파의 인물도 경탄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가 시작한 고대 그리스 문화의 부흥은 [[레오 6세 (비잔티움 제국)|레오 6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7세]] 시대에 후세 ‘마케도니아 왕조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비잔틴 문화]]의 일대 융성을 가져오게 된다.
 
포티오스가 편찬한 280권의 고전에 대한 서평을 기재한 《'''[[비블리오테카]]'''》(''Bibliotheca'')는 그가 [[845년]]에 [[사마라 (이라크)|사마라]]의 [[압바스 왕조]]의 궁정에 사신으로 파견되었을 때 편찬 논의가 있었다. 즉, 압바스의 그리스 고전 번역 운동에 자극을 받아 편찬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총대주교직에 오른 포티우스는 후대를 위해 몇 가지 저작을 남겼다. 그 내용은 총대주교직 및 총대주교와 황제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견해였다. 바실리우스 황제의 말년에 간행된 《에파나고가》(''Epanagoga'', '입문')에서 포티우스는 비잔티움 제국은 황제와 총대주교가 이끄는 단일한 국가이며 두 사람은 백성의 물질적·정신적 행복을 위해 협력하여 일한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