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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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오스트리아의 역사}}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오스트리아 王位 繼承 戰爭, )[[1740년]] ~ [[1748년]])은 거의 모든 유럽의 [[힘 (국제 관계)|강대국]]이 얽힌 전쟁이다([[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오스만 제국]] 제외). 이 전쟁은 여자의 왕위 계승을 금지하는 [[살리카 법]](Salic law, [[라틴어]]로는 Lex Salica)에 따라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a of Austria)가 [[합스부르크 왕가]]를 계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각국이 개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슐레지엔]]({{llang|de|Schlesien}})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합스부르크 왕가]]와 [[프로이센]]이 벌인 전투에 후세의 군사적 관심과 역사적 의의가 집중되어 있다. 열강이 이 전쟁에 개입하였지만, 가장 놀라운 것은 전원이 전문적인 군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프로이센군의 뛰어난 전투력이었다. 프로이센군은 이전의 전형적인 군대처럼 용병들을 집결시킨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프로이센군의 편제는 당시엔 매우 이례적이었다. 심지어 병과를 조합하는 근대의 전술교리를 창안한 [[구스타브 2세 아돌프]](Gustav II Adolf, Gustavus Adolphus)조차도 상당한 수의 용병을 운용했는데, 이는 직업적인 상비군을 운용하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들고, 농민을 징발해서 만든 민병대는 효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