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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죄르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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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르'''({{llang|hu|Győr}}, {{llang|de|Raab|라프}}, {{llang|sk|Ráb|라프}})는 [[헝가리]]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죄르모숀쇼프론 주]]의 주도이며 면적은 174.61㎢, 인구는 131,267명(2011년 기준), 인구 밀도는 730.71명/㎢이다. [[다뉴브도나우 강]]과 접하고 있고 [[부다페스트]](헝가리의 수도)와 [[빈]](오스트리아의 수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중앙유럽의 관문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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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HUN Győr COA.jpg|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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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고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전해지며 [[5세기]]에는 [[켈트족]]이 정착했다. [[8세기]]까지는 "아라보나"(Ara Bona, Arrabona)라는 마을이 존재했다. 죄르의 독일어 이름인 "라프"(Raab), 슬로바키아어 이름인 "라프"(Ráb)는 여기서 유래된 이름이다.
 
[[500년]]경에는 [[슬라브족]], [[547년]]에는 [[랑고바르드인]], [[568년]]부터 [[800년]]경까지는 [[아바르족]]이 정착했고 [[880년]]부터 [[894년]]까지 [[대모라바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900년]]경에 [[헝가리인]]이 정복된 뒤에는 폐허가 된 [[로마 제국]] 시대의 요새가 재건되었다. 헝가리의 [[이슈트반 1세]] 국왕이 이 곳을 관할하는 [[주교]]를 임명하면서 죄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1241년]]부터 [[1242년]]까지 있었던 [[몽골 제국]]의 침공, [[1271년]]에 있었던 [[보헤미아]]의 침공으로 인해 죄르는 크게 파괴되었다. [[1541년]]부터 [[17세기]] 말까지 [[오스만 제국]]이 헝가리 중부, 동부를 지배하면서 죄르는 폐허로 남아 있었으며 [[터키어]]로는 '야느크칼레'({{llang|tr|Yanık kale}}, "불에 탄 성"이라는 뜻)라고 불렀다.
 
[[이탈리아]] 출신의 건축가들이 죄르를 재건하면서 도시 안에는 새로운 성과 요새가 건립되었다. [[1594년]] 헝가리군의 보병 사령관이었던 체스네키 야노시(Cseszneky János)가 사망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지만 [[1598년]]에는 헝가리-오스트리아 연합군이 탈환했다.
 
[[1743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에 의해 [[제국자유도시]] 칭호를 받으면서 학교, 성당, 병원, 수도원이 건립되었다. [[1809년]]에는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인해 파괴되기도 했지만 나중에 재건되었다.
 
[[19세기]] 중반에는 도나우 강에 증기선이 운항하면서 무역 도시로 발전했지만 [[1861년]] [[부다페스트]]와 [[너지커니저]] 사이를 연결하는 철도가 개통되면서 쇠퇴했다. 죄르의 지배자는 공업화를 진행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인해 크게 파괴되기도 했다.
 
== 자매 도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