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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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1953년]] [[7월 26일]] ~ [[1959년]] [[1월 1일]])은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라울 카스트로]] 등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두 차례에 걸친 무장 투쟁을 벌여 [[1959년]] [[1월 1일]]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정권을 잡은 혁명을 말한다. [[7월 26일단]]과 혁명 조직들이 당시 [[풀헨시오 바티스타]] 장군의 독재 정권을 전복하여 쿠바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
 
1956년 12월 2일 피델 카스트로가 이끄는 82명의 무리가 무장 저항 운동 단체를 설립할 목적으로 시에라 마에스트라(Sierra Maestra)에 도착하였다. 1958년말, 그들은 시에라 마에스트라를 박차고 나와, 봉기를 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였다. 이들이 산타 클라라(Santa Clara)를 점령하자, 바티스타는 포르투갈로 탈출하였다. 바르킨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Camilo Cienfuegos), [[체 게바라]], [[라울 카스트로]] 및 그의 형제 [[피델 카스트로]]와 지휘권의 상징적인 변화에 대하여 협상하였다. 이것은 대법원이 그 혁명의 법원성(法源性)을 인정하인정하여, 그 대표자가 명령권을 가진다고 결정한 이후에 나온 것이었다. 카스트로의 군대는 1959년 1월 8일 수도에 입성하였다.
 
==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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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년 12월 이전 ===
 
쿠바 혁명의 시발점은 일반적으로 [[1953년]] [[7월 26일]]로 인정된다. 이 날은 160명의 경무장한 일군의 반란군이 [[산티아고데쿠바|산티아고]]에 있는 [[몬카다몽카다 병영]]과 바야모의 병영을 습격한 날이다. 이때 죽은 반란군의 정확한 수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카스트로는 자서전에서 다섯 명이 싸우다 죽었으며 나중에 바티스타 정권이 56명을 죽였다고 주장한다. 사망자 중에는 몬카다몽카다 병영 습격 작전의 부사령관인 아벨 산타마리아도 있는데, 그는 투옥되어 고문당한 뒤 습격 당일 처형되었다. 살아남은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는 즉시 생포되었다. 재판 중 피델 카스트로는 4시간 가까이 자신을 변호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었다.
 
{{인용문2|나를 벌하라,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다만 역사가 나를 용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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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델 카스트로는 피노스 섬에 있는 프레시디오 모델로 감옥에서 15년 징역을 선고 받았으며, 라울은 13년형을 받았다.
 
[[1955년]] 광범위한 정치 탄압 속에서 바티스타 정권은 몬카다몽카다 병영을 습격한 쿠바의 모든 정치범을 석방했다. 피델의 [[예수회]] 선생들과 그리고 아마도 젊은 시절의 지인들도 바티스타 정권을 설득하여 카스트로 형제를 석방자에 포함하는 데 일조했다.
 
카스트로 형제는 정권을 뒤엎기 위해 혁명을 준비하고자 [[멕시코]]로 가는 망명자들과 합류하였으며, [[스페인 내전]] 당시 공화국군 지도자였던 알베르토 바요의 훈련을 받았다. 이때 피델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만나 군대를 규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