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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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레이만 1세는 즉위하면서 우선 [[베오그라드]] 정복으로 헝가리에 진출하였다. 그리고 [[로도스 섬]]에서 무슬림에 대한 해적 행위를 벌이고 있던 [[성 요한 기사단]]을 쫓아내면서 동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1526년]]에는 [[모하치 전투]]를 통해 헝가리군을 격파, 헝가리의 땅 대부분을 점령한다. 한편, 동쪽으로는 [[사파비 왕조]]를 공격하여 [[바그다드]]까지 손에 넣었으며, 남쪽으로는 [[예멘]]에 출병하여 [[아덴]]을 정복하였다.
 
[[신성로마제국신성 로마 제국]]과 대립하고 있던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와 동맹을 맺은 쉴레이만은 [[1529년]]에 신성로마제국의 수도 [[빈]]을 1개월 이상에 걸쳐 포위하였다. 비록 이 작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오스만군이 [[서유럽]] 내 깊숙이까지 들어와 위협한 이 사건은 당시 서구 국가들에겐 큰 충격이었다. 게다가 [[1538년]] [[프레베자 해전]]에서는 [[스페인]]과 [[베네치아 공화국]] 등을 위시한 기독교 세계의 연합 함대를 대파시켜, 지중해 해상권의 거의 대부분을 손아귀에 넣는 데 성공했다.
 
쉴레이만의 치세는 이처럼 훌륭한 군사적 성공 외에도 건국 이래 오스만 제국이 형성해 온 국가제도가 완성단계에 이르러, 제도상의 파탄이 없었던 훌륭한 이상의 시대로 기록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쉴레이만의 치세는 국가제도의 전환기가 시작된 때이기도 하였다. 쉴레이만 이후, 전쟁터에서 군주가 앞장서서 출정하는 일도 없어졌으며, 정치조차도 거의 재상이 처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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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군사구조를 전환하면서 [[대포]]로 무장한 [[포병]]인 [[예니체리]]를 핵심으로 한 상비군의 중요성이 대두하면서, 그 인원이 폭발적으로 증대하여 유지비가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그에 따라 [[기병]]인 시파히층은 몰락해 갔다. 종래 이러한 변화는 쉴레이만이 죽고 난 후, 제국의 쇠퇴로 인식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구조가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크게 전환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고 지중해 무역이 쇠퇴하고 대서양이 크게 번성하자 오스만제국의 무역이득이 줄어들어 내정이 어려워지게 되고 스페인이 강대국이 됨으로써 오스만제국의 지위가 낮아지게 됐다.
 
=== 국내정치의국내 정치의 혼란과 쇠퇴 ===
[[파일:Battle_of_Lepanto_1571.jpg|right|200 px|thumb|[[레판토 해전 (1571년)]]]]
쉴레이만이 죽은 지 5년 후인 [[1571년]], [[레판토 해전 (1571년)|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함대는 기독교 세계의 연합 함대에게 패하여 지중해의 패권을 상실했다. 그렇다고 해서 오스만 제국이 유럽 제국보다 열세로 돌아선 것은 아니며, 그 국력은 여전히 강대하였으며 또 지중해의 해상권이 순식간에 오스만 제국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제국 함대는 패전한 지 반년 만에 동규모의 함대를 재건하여, [[1573년]]에 [[키프로스 섬]]을, 다음해에는 [[튀니스]]를 획득하였다. 1683년까지 슬로베니아와 아드리아 해 연안을 제외한 모든 [[발칸 반도]] 지역을 지배하였다. <ref name="조르주"/>{{r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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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에 압뒬하미트 2세는 [[청년 투르크 당]]에 의해 폐위되고 [[1918년]] 어느 날 외롭게 죽음을 맞이한다. 청년 투르크 당은 [[메흐메트 5세]]를 황제로 모시고 마드하트 헌법을 부활하고 개정하였으며, 군비 경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모든 민족의 평등’이 ‘터키인으로 한정한 평등’으로 바뀌고 아랍인들을 비롯한 피지배 민족의 독립 열망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것이 [[제1차 발칸전쟁]]의 원인이다. 이 결과 [[알바니아]]가 [[터키]]로부터 독립하였다.
 
=== 제1차 세계대전세계 대전 ===
이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중 동맹국으로 참전하였다. 동맹국은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 [[이탈리아 왕국]]을 일컫는다. 제1차 세계대전에 패전국이 되어 전범 국가로 지목됨으로써 [[세브르 조약]]의 결과, [[1914년]] 이전의 영토를 대부분 상실하고 소아시아와 유럽의 일부만을 지니게 되었다. 그 이후, [[그리스]]한테 침공을 받아 심각하게 위협을 받게되는데, 한때는 국가의 존망이 위기를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2년]]경부터 [[케말 파샤]](장군)의 지휘 아래 그리스군을 [[앙카라]]에서 격파하고, 이에서 도주하는 그리스군을 [[이스탄불]]에서 또 대파함으로써 그리스 영토 일부까지 실지를 회복하는 등 그 영토가 [[로잔 조약]]으로 현재의 터키 공화국의 영토로 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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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역사}}
{{위키공용|Category:Ottoman Empire|오스만 제국}}
* [[오스만 제국의 행정 구역]]
* [[터키]]
* [[쉴레이만 1세]]
* [[무스타파 케말]]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