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마누스 바바리아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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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년 그는 [[비잔틴 제국]]의 [[슬라브인]] 지휘관 [[프리비나]](Pribina)가 [[바이에른]] 국경을 침공하자 이를 방어하는데 성공하였다. [[848년]] [[10월]] 카를로만은 아버지 독일인 루트비히가 [[레겐스부르크]]의 의회에 참석했을 때 동행, 바이에른 국경 방어의 공로로 상금을 받았다.
 
[[855년]] [[동프랑크 왕국]]의 [[오스트마르크]]의 변경백 라트보트(Radbod)는 불성실함으로 지위를 잃게되자, 동프랑크의 종주권을 인정하던 [[대모라바 모라비아왕국]](Moravia)의 공작 라디스슬라프(Rastislav)도 반란을 일으켜 영지를 잃게 됐다. [[856년]] 아버지 [[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독일인 루트비히]]는 라디스슬라프를 파면하고 그 자리에 카를로만을 [[케른텐]] [[공작 (작위)|공작]]에 임명하여 파견했다. [[856년]] [[판노니아]](Pannonia)의 변경백(Margraves)이 되어 [[케른텐]]의 공작과 [[판노니아]]의 [[변경백]]을 겸하며 왕국의 동남부를 통제했다. 그러나 아버지 독일인 루트비히는 그에게 군사권 이외의 권리는 일부만을 넘겨주어, 자신의 재가를 받게 하였다.
 
[[858년]] 라체슬라프는 카를로만에게 많은 양의 [[금]]과 [[보물]]을 뇌물로 바쳐왔고, 그는 이를 받았다. [[861년]] [[케른텐]] [[백작]] [[파보]](Pabo) 등 [[케른텐]]의 군사를 이끌고 아버지 [[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독일인 루트비히]]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카를로만은 [[판노니아]] [[후작]] [[리하르 (판노니아)|리하르]](Rihher), 케른텐 [[백작]] [[파보]], [[케른텐]] [[후작]] [[군다카르]](Gundachar) 등을 부관으로 삼아 [[베를린]]을 침공했다. 아버지 [[프랑크의 루트비히 2세|독일인 루트비히]]는 세 아들에게 나눠줄 영토를 [[바이에른]], [[작센]], [[알레만니아]]로 삼분하고, 아들들을 각자 현지의 유력인사의 딸들과 결혼시켰다. 그러나 카를로만의 본부인의 이름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862년]] 카를로만은 아버지의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바이에른]] 밖의 부족들을 정벌하여 영토를 확장하려 했으나, 게르만 전사들에게 패배하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