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두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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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는 이 시에 [[려강]]을 본거지로 하는 잔왕의 세력이 유입되었지만, 17세기 중반 [[오이라트]]의 [[구시 칸]](Güshi Khan, 固始汗) 왕조가 티베트 정복에 나섰을 때, 그 지배하에 들어갔다. 18세기, [[옹정제]]의 티베트 분할에 의해 캄 지방이 삼분되었을 때, [[달라이 라마]]에게 상으로 주어지고, 이후 「서장」의 일부분으로서 자리 매김되게 되었다.
 
[[1905년]], 쓰촨 성 총독 조이풍(趙爾豊)은 쓰촨군을 인솔해 티베트를 침공하여, 명목 상 쓰촨성에 속해 있던 캄 지방 동부의 제후들이나, [[라싸]]를 본거지로 하는 간덴포탄 등을 차례차례로 격파하고, 1911년, 라싸에 입성 했다입성했다. 조는 간덴포탄이나 그 외의 티베트인의 소정권을 모두 점령하였고, 티베트를 중국에 병합하려고 계획하였다. 라싸 동쪽 100 km 정도에 위치한 타이자오(太昭)에 새로운 경계를 설정하고, 이 땅까지 창두 시를 시작으로 하는 캄 지방 서부와 캄 지방 동부를 맞춘 영역에 서강성(西康省)을, 타이자오 서쪽으로 서장성(西蔵省)을 설치할 준비에 착수했다. 그러나 같은 해 10월 [[신해혁명]]이 발발하여, 조는 본거지 쓰촨성 성도로 돌아가 혁명파에 살해되었다.
 
중국 정부는 이 땅을 촨비앤특별구(川辺特別区)에 편입시켰고, 후에 발족되는 서강성의 영역으로 확보하려고 했지만, 티베트의 통합과 독립국가로 국제 승인을 받으려는 간덴포탄은 캄 지방의 전역을 탈환의 목적으로서 자주 출병하여, 1918년, 창두 시에 해당하는 지역의 확보에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