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프 2세: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잔글편집 요약 없음
28번째 줄:
|서명 =
}}
'''요제프 2세'''({{llang|de|Joseph II}}, [[1741년]] [[3월 13일]] ~ [[1790년]] [[2월 20일]])는 로마 왕([[1764년]] ~ [[1765년]])이었으며, 그의 아버지인 [[프란츠 1세]]가 죽은 뒤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재위: [[1765년]] ~ [[1790년]])가 되었다. 그러나 재위 초기(1765년 ~ [[1780년]])에는 모후 [[마리아 테레지아]]와 함께 제국을 공동 통치하였고,<ref>오영옥, 《영원한 국모 마리아 테레지아》(파주: 나남, 2009), p. 234.</ref> 모후가 죽은 뒤에야 단독으로 제국을 통치할 수 있었다. 보헤미아의 국왕 '''요세프 2세'''({{llang|cs|Josef II.}}), 헝가리의 국왕 '''요제프 2세'''({{llang|hu|II. József}})에 해당한다.

요제프 2세는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이다. 요제프는 뛰어난 기억력과 호전적이고 냉소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ref>오영옥, 《영원한 국모 마리아 테레지아》(파주: 나남, 2009), pp. 193 - 96.</ref> 요제프는 결혼을 통해 딸 한 명만을 얻었으나, 그 딸은 요제프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에 요제프의 후계자는 동생 레오폴드가 되었다.<ref>오영옥, 《영원한 국모 마리아 테레지아》(파주: 나남, 2009), p. 270.</ref>
 
군주로써 요제프는 [[계몽전제군주]]적 성향을 띄었으며, 생전에 많은 개혁을 추진했다.<ref>오영옥, 《영원한 국모 마리아 테레지아》(파주: 나남, 2009), p. 240.</ref> 요제프가 이룩한 관료 체제는 오스트리아에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ref>윌리엄 존스턴,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 변학수·오영록 외 옮김(파주: 문학동네, 2009), p. 84.</ref> 요제프의 계몽절대주의는 관료화와 반교황주의적인 가톨릭주의가 결합되었는데, 이를 [[요제프주의]]라 한다. 요제프주의는 19세기까지 발전했다.<ref>윌리엄 존스턴,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 변학수·오영록 외 옮김(파주: 문학동네, 2009), p. 38.</ref>그는 농노제를 폐지하고 '종교적 관용에 대한 칙령(Patent of Toleration)'을 통해 법 앞에서 모든 종교가 평등하다는 원칙을 수립했다. 또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가톨릭교회 [[예수회]]를 해산시켰다. 이같은 개혁조치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황과 갈등을 빚었다. <ref>브리태니커 편찬위원회, 《근대의 탄생》(Agora, p. 271)</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