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눌푸스 카린티아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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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족 정보
|이름 = 아르눌푸스 카린티아에
|이름=아르눌프<br />
|원래 이름 = {{lang|la|Arnulphus Carintiae}}
|그림 = Die deutschen Kaiser Arnulph.jpg
|재위=[[896년]] ~ [[899년]]<br />[[887년]] ~ [[899년]]<br />[[896년]] ~ [[899년]]<br />[[887년]] ~ [[894년]]
|그림크기 = 260px
|왕비=파리의 오다<br />, 네우스트리아의 오타<br />, 빈부르가
|그림설명 =
|이전 왕=[[스폴레토의 람베르토 2세|람베르토 2세]]<br />[[카를 3세]]<br />[[스폴레토의 람베르토 2세|람베르토 2세]]<br />[[카를 3세]]
|서명 = Arnulf_signum_890.png
|다음 왕=[[루트비히 3세 (신성 로마 제국)|프로방스의 루트비히]]<br />[[프랑크의 루트비히 4세|루트비히 ''유아왕'']]<br />[[루트비히 3세 (신성 로마 제국)|프로방스의 루트비히]]<br />[[츠벤티볼트]]
|서명크기 = 100px
|부왕=[[바이에른의 카를만]]
|문장 =
|모후=바이에른의 리트빈데
|문장설명 =
|왕가=[[카롤링거 왕가]]
|목록=[[신성로마제국황제]]<br />[[독일의 군주|동프랑크의 왕]]<br />[[이탈리아의 군주|이탈리아의 왕]]<br />[[로타링기아 왕국|로트링겐의 왕]]
}}
 
|작위 = [[파일:Imperatores Romani.svg|center|30px|link=카롤루스 왕조 서로마 황제]][[카롤루스 왕조 서로마 황제|서로마 황제]]
'''아르눌프'''([[슬로베니아어]]:''Arnulf Koroški'', [[독일어]]: ''Arnulf von Kärnten'')([[850년]] - [[899년]] [[12월 8일]])는 [[동프랑크]]의 군주로 [[카를 대제]]의 4대손이다. [[887년]]부터는 [[독일의 군주|동 프랑크의 왕]]이자 [[894년]]부터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위를 놓고 [[구이도 3세]]와 [[스폴레토의 람베르토 2세|람베르토]] 등과 분쟁하였으며, [[896년]]부터는 [[바이에른]]의 [[레겐스부르크]]에서 사망할 때까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다. 그는 [[바이에른의 카를만|바이에른공 카를만]]의 서자로 아버지가 죽으면서 케른텐의 공작지위를 물려받았다.
|재위 = 896년 2월 22일-899년 12월 8일
|대관식 =
|전임자 = [[람베르투스 스폴레텐시스]]
|후임자 = [[루도비쿠스 3세 카에쿠스]]
 
|작위2 = [[파일:Corona_ferrea_monza_(heraldry).svg|center|30px|link=이탈리아왕]][[이탈리아왕]]
|재위2 = 894–899
|대관식2 =
|전임자2 = [[람베르투스 스폴레텐시스]]
|후임자2 = [[루도비쿠스 3세 카에쿠스]]
 
|작위3 = [[독일의 군주|동프랑크인의 왕]]
|재위3 = 887년–899년
|대관식3 =
|전임자3 = [[카롤루스 3세 크라수스]]
|후임자3 = [[루도비쿠스 4세 인판스]]
 
|휘 =
|별호 =
|연호 =
|묘호 =
|존호 =
|시호 =
|능호 =
 
|출생일 = 850년경
|출생지 =
|사망일 = 899년 12월 8일
|사망지 =
|매장지 =
|능묘 =
 
|왕조 = [[카롤루스 왕조|카롤루스조]]
|가문 =
|아버지 = [[카를로마누스 (바이에른)|카를로마누스]]
|어머니 = 리우츠빈드
|배우자 = [[오타 (동프랑크인의 왕비)|오타]]
|자녀 =
|친인척 =
|종교 = [[천주교]]
}}
'''아르눌프아르눌푸스 카린티아에'''([[슬로베니아어]]:''Arnulf{{llang|la|Arnulphus Koroški''Carintiae}}, [[독일어]]: ''{{llang|de|Arnulf von Kärnten'')(|아르눌프 폰 케른텐}}, {{llang|sl|Arnulf Koroški|아르눌프 코로슈키}}: [[850년]] - [[899년]] [[12월 8일]])는 [[동프랑크]]의 군주로 [[카를 대제]]의 4대손이다. [[887년]]부터는 [[독일의 군주|동 프랑크의 왕]]이자 [[894년]]부터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위를 놓고 [[구이도 3세]]와 [[스폴레토의 람베르토 2세|람베르토]] 등과 분쟁하였으며, [[896년]]부터는 [[바이에른]]의 [[레겐스부르크]]에서 사망할 때까지,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다. 그는 [[바이에른의 카를만|바이에른공 카를만]]의 서자로 아버지가 죽으면서 케른텐의 공작지위를 물려받았다.
 
[[879년]] [[바이에른]]을 잠시 통치하였고, [[880년]] 아버지 [[카를만]]이 죽자 아버지의 영지인 [[바이에른]]과 [[이탈리아]]의 상속권을 주장했으나 묵살당했다. 이후 카를 3세에 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고, 886년 [[카를 3세]]가 [[노르만족]]과 [[마자르족]]을 뇌물로 매수해서 되돌려보내자 귀족들의 지지를 받고 쿠데타를 일으켜 [[887년]] [[11월]] [[동프랑크 왕국|동프랑크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후 그는 황제는 아니었지만, 서프랑크와 이탈리아를 상대로 종주권을 주장, [[서프랑크]]의 [[외드]]와 [[라울 (서프랑크)|라울]], [[이탈리아]]의 [[베렝가리오 1세|베렌가르]] 등을 봉신으로 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