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령 마카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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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위치=
|공용어= [[포르투갈어]]
|정부형태= [[왕령식민지]]
|지도자_칭호=
|지도자_이름=
|사건 = &nbsp;• 조차<br />&nbsp;• 반환
|사건날짜 =[[1577년]] <br />[[1999년]]
|면적 = 31.3 km2
|면적_순위 =
|내수면_비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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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령 마카오'''({{llang|yue|葡屬澳門}}, {{llang|pt|Macao Portuguesa}})는 [[1577년]]부터 [[1999년]]까지 [[중국 대륙]]에 존속한 [[포르투갈]]의 식민지이다.
 
원래는 [[광둥 성]] 샹산 현[香山縣]에 속해 있었다. 1553년 [[포르투갈인]]들은 물에 젖은 화물을 말린다는 구실을 내세워 처음 마카오에 발을 들여 놓은 후 1557년 중국(당시 [[명나라]]) 관리자들에게 뇌물을 주고 마카오 반도의 거주권을 획득하였다. 포르투갈은 1553년 대(對)중국 무역권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마카오의 실질적인 사용권을 인정받고, 광둥의 중국 관리(官吏)로부터 도시건설허가를 얻었다.
 
1975년 [[로마 교황]]이 포르투갈 정부의 후원으로 그 곳에 마카오 관구(管區)를 설립하였다. 그후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대(對)아시아 진출을 위한 거점이 되는 동시에 1841년 [[영국]]이 [[홍콩]]에 식민지를 개설하기까지 중국과 서양의 유일한 교류기지가 되었다. 마카오를 거쳐 중국으로 전해진 문물은 그리스도교 외에 서양에서 발달한 [[천문학]], [[유클리드 기하학]], 근대적인 지도투영법, 대포주조기술 등이 있고, 특히 동·서양의 지리적 지식교류에 커다란 역할을 한 [[마테오 리치]]도 마카오를 거쳐서 중국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편전쟁]]으로 [[홍콩]]이 [[영국]] 식민지가 된 후, 아시아에서의 세력유지에 혈안이 된 [[포르투갈]]은 아오먼[澳門] 반도 전역과 [[타이파]]·[[콜론]] 두 섬을 점령하고, 1887년 [[청]](淸)·[[포르투갈]]조약을 맺어 그 지역에서 식민지 건설을 합법화하였다. 이후부터 마카오는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1951년 포르투갈의 헌법개정에 따라 ‘해외주(海外州)’로 바뀌어 본국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본국 정부가 임명하는 [[총독]]의 통치하로 들어갔다. 1966년 중국에서 [[문화혁명]]이 일어나 마카오 정청(政廳)과 현지의 중국인 간에 분쟁이 일어났다. 1973년 3월 ‘[[자치령]]’이 되고, 1979년 [[중국]]·포르투갈 간에 국교가 수립되어 1986년 [[베이징]]에서 [[마카오 반환협정]]을 체결하고, [[1999년]] 12월 20일 중국은 마카오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였다.
 
==사진==
[[File파일:Vistaseculo19portosinterioreexterior.jpg|1000px]]
 
[[분류:마카오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