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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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극'''(新派劇)은 [[일본]]에서 처음 발생한 [[연극]]의 한 사조로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서도 활발히 공연되었다. 줄여서 '''신파'''라고도 한다.
 
== 일본의 신파극 ==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에 서양의 연극 양식을 받아들인 정치극으로 시작되어 [[19세기]] 말엽에 지위를 굳혔다. 신파라는 용어는 일본의 전통 연극인 [[가부키]]를 구파로 보고 새로운 연극이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것이다. 발전 과정에서 점차 초기의 계몽적, 정치적 요소가 탈색되면서 오락적, 감상적 요소가 강해졌다.
 
== 한국의 신파극 ==
한국에는 [[한일 병합 조약]] 체결 직후인 [[1910년대]]에 유입되어 인기를 끌었다. 처음 신파극이 도입되었을 때는 언어만 한국어로 바꾸어 공연될 뿐 일본 신파극을 직수입했다. 따라서 번안 대본을 비롯하여 연극의 모든 요소가 일본 신파극의 요소를 그대로 이식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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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극에는 가부장제와 같은 구시대적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 근대적 인식이 본격화된 [[1920년대]]에는 개량신파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었고, [[1931년]] [[극예술연구회]]가 창립되면서 신극과 확연히 구분되는 장르가 되었다. 신파극도 선진적인 신극의 영향을 받아 발전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1935년]] [[동양극장]] 설립 이후 체계적인 공연 체제를 가동하면서 상업적인 성공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이서구 (1899년)|이서구]], [[박진 (연극인)|박진]], [[송영 (극작가)|송영]], [[김건 (극작가)|김건]], [[박영호 (극작가)|박영호]], [[최독견]] 등이 신파극 전문 작가로 인기를 모았다. 소재는 가정비극과 사극이 주조를 이루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은 흥행에 크게 성공한 [[임선규]]의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이다.
 
[[한국 전쟁]] 전인 [[1940년대]] 후반까지 공연되다가 소멸했다. 한국 전쟁 후에는 신파극이라는 장르 자체는 화석화되었으나, 신파극이 품고 있던 요소는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장르에 잔존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