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란 페르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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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예란 페르손'''({{llang|sv|Hans Göran Persson}}, [[1949년]] [[1월 20일]] ~ )은 [[스웨덴]]의 정치인이다. [[1996년]] ~ [[2006년]]의 10년간 [[스웨덴의 총리|총리]]로 재직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사회민주당 (스웨덴)|사회민주당]]에 들어가 정치활동을 했고, [[1979년]] 국회의원에 선출되었다. 사회민주당 정권에서 [[1994년]]부터 재무장관을 맡아 경제 위기 문제를 해결하여 명성을 얻었으며, [[1996년]] [[잉바르 칼손]] 총리가 사임하면서 사회민주당 대표로 선출되어 총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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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럽 연합]](EU) 가입 다음해가 되는 그의 취임 첫 해에는 경제 성장률은 둔화되고, 물가와 실업률은 상승하는 등의 위기를 맞았다. 이런 가운데에도 [[1998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입지를 강화했으며, 유럽 연합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는 유럽 연합 순번제 의장을 맡고 있던 [[2001년 5월]], [[유럽 연합]] 의장 자격으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였다. 서방 국가 수반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북한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한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미사일]] 문제와문제, 남북한 화해·협력 문제에 관하여 논의하였다. 북한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한 후 곧바로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김대중]] 대통령과 남북한 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그 후 다시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방문을 시도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2004년 3월]]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고 남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전도사 역할을 할 의사를 내비치고, 대한민국과 스웨덴 간의 경제 협력 강화에 대해 논의했다.
 
그의 집권 기간 중 스웨덴의 경제는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제 해결에 참여하는 등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나, 대내적으로 실업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2003년]] [[유로화]] 도입 투표에서 사회 분열을 초래하는 등의 문제로 인기가 떨어져 [[2006년]] 총선에서 야당의 중도우파연합에 패하여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2007년]]에는 국회의원직과 사회민주당 당수직을 내놓고 정계에서 물러났다.
 
{{스웨덴의 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