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업: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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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파일:Korea-Portrait of Song Si-yeol in 1689-joseon.jpg|thumb|right|140px|[[1689년]] 그가 그린 [[송시열]] 영정]]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이며 진사에 급제하여 교관을성균관에 입교 [[성균관]][[진사]]가 되었으며, [[동몽교관]]과 [[통덕랑]]을 지냈다. [[1689년]](숙종 15년) [[기사환국]]으로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되자 관직에 뜻을 버리고 시문과 학문, 그림 등을 교육하였다. 시문과 그림에 뛰어났으며 단원 [[김홍도]]의 스승 중의 한사람이다.
 
[[괴산군]] 화양 서원에 있는 [[송시열]]의 화상은 그가 그린 것을 화공이 그대로 베낀 것이다. [[조선 숙종|숙종]] 때 형인 김창협과 [[베이징|북경]]에 다녀와서 기행문 〈연행록〉을 썼다. 저서로 〈노가재집〉이 있다.
 
[[1722년]](경종 2년) 그가 개인적으로 땅을 개간하여 열무장(閱武場)을 만든 것을 두고 [[대간]]에서 탄핵하여 폐쇄시키기도 하였다. [[1792년]](정조 16년) [[6월 3일]] 손자 [[김이익]](金履翼)이 통정대부 수충청도관찰사(종2품직)에 임명되었으므로 증조부였던 그는 법전에 따라 증 통훈대부 사복시정에 추증되었다.
[[조선 진종|효장세자]]의 비 [[효순왕후|현빈 조씨]]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족보상으로는 [[정조]]의 외외증조부가 된다.
 
한편 그의 다른 손자 김양행이 1779년에 형조참판에 임명된 바 있어 1792년 6월 3일 다시 증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그는 [[조선 영조|영조]]의 서장자 [[조선 진종|효장세자]]의 비 [[효순왕후|현빈 조씨]]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족보상으로는 [[정조]]의 외외증조부가 된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