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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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1세기 무렵 [[흉노]]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가, 다시 6세기에 [[돌궐]]의 지배를 받게 된다. 7세기에는 [[당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며, 8세기에는 다시 [[위구르]]의 침략을 받아 지배를 받게 된다. 9세기에는 위구르 제국을 멸망시켰으나 키르기스족은 몽골 지역을 정복하지는 않았고 자신들의 근거지로 돌아갔다. "키르기스"는 튀르크계 언어로 "40"을 뜻하는데 이는 키르기스스탄의 민족 서사시인 《마나스》에 등장하는 40개의 부족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러나 13세기에는 [[몽골 제국]]의 지배 하에 다시 들어가고, 16세기에 이르러 현재의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다. [[1863년]] 북쪽 지역이 러시아 제국에 병합이 되며, [[1922년]] [[소비에트 연방]]이 성립되게 된다. [[1926년]] 키르기스 자치공화국으로 개칭을 하고, [[1991년]] [[8월 31일]] 소련의 쿠데타에 의해 독립을 하게 된다. [[1993년]] 새 헌법을 제정하고, 지금의 명칭을 사용하게 된다.
 
키르기스스탄은 [[2005년]]에 [[튤립 혁명]]으로 아카예프 대통령이 쫓겨났는데, 혁명 주역 가운데 [[고려인]]도 들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ref>[http://www.hani.co.kr/kisa/section-002001000/2005/11/002001000200511081839115.html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 언론인 이계룡·라리사 리씨]</ref>
[http://www.hani.co.kr/kisa/section-002001000/2005/11/002001000200511081839115.html 키르기스스탄의 고려인 언론인 이계룡·라리사 리씨]</ref>
 
[[2005년]] [[7월 10일]] [[쿠르만베크 바키예프]]가 대통령 선거에서 압승을 하여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2008년]] [[10월 6일]]에 키르기스스탄 남쪽에서 [[지진]]이 발생, 사망자가 65명으로 늘었다.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1&oid=003&aid=0002314517 <상보>키르기스스탄 지진 사망자 65명으로 증가]</ref>
 
[[2008년]] [[10월 6일]]에 키르기스스탄 남쪽에서 [[지진]]이 발생, 사망자가 65명으로 늘었다. <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4&sid2=231&oid=003&aid=0002314517 <상보>키르기스스탄 지진 사망자 65명으로 증가]</ref>
 
[[2010년]] [[4월 7일]] 경기 침체와 정부의 언론 통제로 수도 [[비슈케크]]를 중심으로 야당 측에 의한 반정부 운동이 격화되어 야당 세력이 대통령궁을 점거하였다. 다음 날 [[4월 8일]] 전 외상 [[로자 오툰바예바]]가 임시 정부 수립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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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 ==
키르기스인은 [[유목민]]의 전통을 의식하는 [[민족]]으로서, 부족주의적 성격이 강하며 지역적으로 [[남부]]와 [[북부]]의 [[문화]]적 차이가 크다. 옛 [[실크로드]]를 따라서 취락이 발달하였으나, [[코칸드 칸국]]이 1825년에 토성의 요새를 건설하고 피슈페크(Pish Pek)라는 취락이 형성되었다.

1940년대 1940년 후이후에는 [[러시아소련]] 당국이 이 요새지를 파괴하고 자국의 [[수비대]]를 주둔시켰다. 토성 요새지의 흔적은 [[제2차 세계대전]] 후까지 일부 남아 있었으나 오늘날 신흥 [[아파트]] 지역으로 바뀌었다. 도시경관 중에서 [[중앙아시아]]적 경관은 없고 [[러시아]]의 도시풍이 압도하여 오래된 고목, 뒷골목의 [[주택]]이 [[우크라이나]] 양식이다.
 
양식이다.
키르기스스탄의 민족 [[서사시]]인 《[[마나스]]》는 [[구전]] 서사시로서 길이가 약 500,000행 이상에 달한다.
 
== 행정 구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