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바드 공화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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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나라 정보
|나라이름=이란소련
|현지이름=마하바드 공화국
|다른표기={{lang|ku|کۆماری مەهابا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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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기간 내내 영미는 이란을 [[나치 독일]]과 맞서 싸우는 소련에 군수 물자를 제공하는 중요한 보급로 역할로 이용했다. 3만명에 달하는 미군 비전투 요원과 보급물자가 이란을 거쳐갔으며, 나중에는 "승리의 다리"라는 말이 붙여지기도 했다. 1943년 [[테헤란 회담]]에서는 [[연합국 (제2차 세계 대전)|영미소 빅3]]가 이란의 미래 주권과 영토 보전을 보장해주었으며 전후 재건과 개발을 위한 자금 지원도 약속했다.<ref name="LenczAmPres">[[George Lenczowski]], [https://books.google.com/books?ei=mjJTS9LlApGEkwSX_MmVCg&cd=1&id=o9y6AAAAIAAJ&dq=George+Lenczowski%2C+%281990%29%2C+American+Presidents+and+the+Middle+East%2C+p.+27&q=%22Iran-Azerbaijan+Crisis%22#search_anchor ''American Presidents and the Middle East''], (1990), p. 7-13</ref>
 
이란의 점령은 독일 항복 이후 열린 [[포츠담 회담]]에서 전후 끝난다고 말했지만,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은 앞서 테헤란 회담에서 합의한 처칠의 연합국 철수안에 대해 반대했다.<ref>[[Harry S. Truman]], Memoirs, Vol. 1: ''Years of Decision'' (1955), p.380, cited in Lenczowski, ''American Presidents'', p.10</ref> 1945년 9월 [[대일 전승 기념일|일본이 항복]]한 이후 미군과 영국군은 조약에 규정된 대로 합의된 기한 내에 이란 내에 군대를 철수했다. 하지만 소련군은 합의 기한인 3월 2일을 넘겨도 철수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군사를 남쪽으로 진격시켰다. 1945년 12월 말 군대와 비밀경찰을 동원하여 이란 영토 내에 친소 "인민공화국"인<ref name="LenczAmPres"/> [[자파르 피셰바리]]의 [[아제르바이잔 인민 정부]]와 [[카지 무함마드]]의 마하바드 공화국을 독립시켰다.
 
마하바드 공화국은 1945년 12월 독립을 선포했다.<ref name=kurdishwarrior>Michael G. Lortz. (Chapter 1, Introduction). ''The Kurdish Warrior Tradition and the Importance of the Peshmerga''. pp.27-29. [http://etd.lib.fsu.edu/theses/available/etd-11142005-144616/unrestricted/003Manuscript.pdf]</ref> 초기에 소련에게 승인받은 이 [[쿠르드인]] 공화국은 [[카지 무함마드]]가 종교 지도자이자 정치적 지도자로 활약했다.<ref name=kurdishwarrior/> 소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하바드 공화국의 신생 군대인 [[페쉬메르가]]의 총지휘관으로 [[무스타파 바르지니]]가 활약했다.<ref name=kurdishwarrior/> 바르자니의 군 지원과 쿠르드족 60명의 부족 지도자들과 함께 KDP-I을 창당했으며 1946년 1월 22일 카지 무함마드가 마하바드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공식 취임하였다.<ref name=kurdishwarri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