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저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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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8년]] [[셜러몬]]에 대한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해 아버지와 함께 폴란드로 망명했지만 [[1060년]] 폴란드의 지원을 받은 벨러 1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귀환했다. [[1064년]] [[1월 20일]] [[죄르]]에서 체결된 조약에 따라 공작 직위를 회복했다.
 
공작으로 있던 1064년부터 [[1071년]]까지 [[셜러몬]] 국왕과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페체네그족]], [[비잔티움 제국]]과의 전투에 참전했다. [[1074년]] [[3월 14일]]에 일어난 모조로드(Mogyoród) 전투에서 셜러몬을 물리치고 국왕에 즉위했다. 1074년 초반에는 [[신성 로마 제국]]과 적대 관계에 있던 [[그레고리오 7세]] 교황에게 자신을 헝가리의 군주로 승인해 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전달했지만 교황 측이 헝가리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했기 때문에 거절했다.
 
[[1075년]]에는 비잔티움 제국의 [[미하일 7세 두카스]] 황제로부터 "옛날부터 헝가리에 전해지는 성스러운 왕관"을 하사받았는데 왕관에는 "성실한 튀르크인(헝가리인)의 영지의 군주이신 게저"가 새겨져 있었다. 게저 1세는 대관식에서 미하일 7세 두카스로부터 하사받은 왕관을 사용했다. 또한 [[니키포로스 3세 보타니아티스]]의 조카였던 시나데네(Synadene)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2번째 아내로 삼게 된다.
 
짧은 재위 기간 동안에 거럼센트베네데크(Garamszentbenedek, 현재의 [[슬로바키아]] 흐론스키베냐디크(Hronský Beňadik))에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건립했다. [[1076년]]에는 셜러몬이 지배하고 있던 모숀(Moson), 포조니(Pozsony, 현재의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를 탈환하려고 했지만 패전하고 만다. [[1077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시신은 [[바치]](Vác) 성당에 안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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