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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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도들은 [[우마이야 칼리파조]]에게 정복당했던 이베리아 반도를 재정복하는 [[레콩키스타]]를 8세기부터 진행해 왔다. 1085년 레온-카스티야왕 [[알폰소 6세 (레온과 카스티야)|알폰소 6세]]가 [[톨레도]]를 탈환하면서 레콩키스타 운동이 전환점을 맞았다.<ref>{{Harvnb|Bull|1999|pp=18–19}}</ref> 비슷한 시기인 1091년, [[노르만인]] 모험가 [[로제 1세|로제 드 오트빌]]이 무슬림들이 지배하는 [[시칠리아 토후국]]을 무너뜨렸다.<ref>{{Harvnb|Mayer|1988|pp=17–18}}</ref>
이렇게 여러 전선에서 권력쟁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1054년에는 서로마 교회와 동로마 교회가 상호 파문, 기독교 세계가 두쪽나는 [[동서 교회의 분열]]이 일어났다.<ref>{{Harvnb|Mayer |1988|pp=2–3}}</ref> [[그레고리우스 개혁]] 이후 [[교황령]]은 이탈리아 반도에 대한 영향력과 권력을 증가시키려 시도해 왔고, 그 과정에서 교황과 [[신성로마황제]] 중 어느 쪽에 주교 및 사제 서임권에 대한 우선적 권리가 있느냐는 [[서임권 투쟁]]이 1075년경부터 시작되어 제1차 십자군 시기까지 계속되었다.<ref>{{Harvnb|Rubenstein|2011|p=18}}</ref><ref>{{Harvnb|Cantor|1958|pp=8–9}}</ref> 서임권 투쟁 중 대부분의 시기 동안 [[대립교황 클레멘트 3세]]가 옹립되어 군림했고,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초기 재임기 대부분을 [[로마]] 밖에서 망명생활로 보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권력을 증대시키고자 한 교황령의 종교적 선전선동에 의해 무슬림들로부터 팔레스타인 성지를 되찾는 "[[정당한 전쟁]]"에 대한 요구와 관심이 천주교 세계 인구 전반에 걸쳐 극렬해졌다. 십자군 종군은 그 자체로 죄를 씻을 수 있는 [[보속]]의 한 형태로 여겨졌다.<ref>{{Harvnb|Riley-Smith|2005|pp=8–10}}</ref>
 
=== 11세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