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불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잔글 HotCat을 사용해서 분류:튜더 가 삭제함, 분류:튜더가 추가함
TedBot (토론 | 기여)
잔글 봇: 틀 이름 및 스타일 정리
17번째 줄:
|왕가=[[튜더 왕가]]
}}
'''앤 불린'''({{lang|en|Anne Boleyn}} /ˈbʊlɪn/, [[1501년]](?) - [[1536년]] [[5월 19일]])은 [[잉글랜드의 헨리 8세|헨리 8세]]의 제1계비이며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엘리자베스 1세]]의 생모이다. 헨리 8세는 앤 불린과 결혼하려고 [[민족주의]] 성격의 [[종교개혁]]을 일으켜 [[영국 성공회|잉글랜드 교회]]를 [[로마 가톨릭교회]]와 결별시켰다.
 
딸 엘리자베스를 낳은 후, [[불륜]]과 [[이단]], [[모반]] 등의 [[혐의]]를 받아 [[1536년]] [[5월 19일]] [[사형]]당했다. 그로부터 11일 후에 헨리 8세는 앤 불린의 상궁출신이었던 [[제인 시무어]]와 결혼하였다. 후일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왕비가 되는 [[캐서린 하워드]]는 그녀의 외사촌 여동생이었다.
24번째 줄:
앤 불린의 아버지는 외교관 [[토머스 불린]], 어머니는 명문집안인 하워드 가문의 [[엘리자베스 하워드|엘리자베스]]였다. 생년월일은 명확하지 않으나 초여름에 [[노포크]] 지방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기록들에 의하면 앤 불린은 1499년에서 1512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보이나 학계에서는 1501년이나 1507년을 가장 신빙성 있게 보고 있다. 후에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왕비가 되는 [[캐서린 하워드]]는 그녀의 외삼촌 [[에드먼드 하워드 경]]의 딸이었다.
 
그녀의 자매 메리 불린 역시 [[헨리 8세]]의 정부였다. 윌리엄 캐리의 미망인으로 한때 헨리 8세의 정부였던 언니 메리 불린은 윌리엄 스태포드와 재혼하였다.
 
총명하고 재치있는 성격으로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 궁정에서 수업을 받으며 예법을 닦았고 [[프랑스어]]와 [[라틴어]]에 능숙했다. [[프랑스의 루이 12세]]의 왕비 [[메리 튜더 (프랑스의 왕비)|메리 튜더]]의 시녀가 되었다가 루이 12세가 승하하고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프랑수아 1세]]가 즉위하자 그의 정비 클로드의 시녀로 간택되었다. 오랜 프랑스 생활로 프랑스 문화에 동화된 앤 불린은 이후로도 프랑스식 옷차림, 문학, 음악, 그리고 [[종교개혁]]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1521년경 앤 불린은 오몬드 공작과의 혼담을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와 [[헨리 8세]]의 정비 [[아라곤의 캐서린]]의 시녀가 된다. 지참금 문제로 오몬드 공작과의 혼담이 무산되자 앤 불린은 노섬브리아 공작의 후계자 헨리 퍼시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분 차이와 [[토머스 울지]] 추기경의 반대로 퍼시와의 결혼은 무산되었다. 이에 낙심한 헨리 퍼시는 궁정을 떠났다.
 
[[파일:Anneboleyn2.jpg|thumb|left|앤 불린]]
38번째 줄:
1532년 헨리 8세는 앤에게 펨브로크 여후작(''Marquess of Pembroke'')의 지위를 내려 그녀의 신분을 격상시켰다. 미혼 여성이 직접 작위를 하사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같은 해 크랜머 대주교가 헨리 8세와 캐서린의 결혼을 성경적이지 않은 것이라는 판결을 내리면서 무효로 했다.
 
[[1533년]] 1월경 헨리 8세와 앤 불린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린다. 당시 앤은 이미 임신한 상태였다. 같은 해 6월 1일 앤 불린은 호화로운 예식을 통해 잉글랜드의 왕비로 즉위했다.
 
1533년 9월 7일 앤은 딸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엘리자베스]]를 낳았다. 헨리 8세는 실망했으나 곧 아들도 생길 것이라며 희망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앤이 수차례에 걸쳐 유산을 반복했고, 부부 사이의 말다툼이 잦아지자 왕의 마음도 앤에게서 멀어졌다. 대신 왕은 앤 불린의 시녀 [[제인 시무어]]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한다. 앤 불린의 정적 [[토머스 크롬웰]]은 [[제인 시무어]]를 지지하면서 왕비와 불린 가의 추락을 획책했다.
 
1536년 앤 불린과 남동생 로시포드 공작 조지 불린, 그리고 두 사람과 가까운 귀족 청년들 몇몇은 간통과 반역, [[근친상간]] 혐의로 [[런던 탑]]에 감금되었다. 심지어 앤 불린은 [[마법]]으로 왕을 유혹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부족했으나 앤 불린은 두 차례에 걸친 재판에서 모두 유죄 선고를 받았다. 본래 앤은 화형당하기로 판결되었으나 나중에 헨리 8세에 의하여 참수로 감형되었다. [[참수형]]이 확정되자 앤은 자신의 시녀에게 “내 목이 가늘어서 다행이다.”라고 씁쓸한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앤의 사형 집행은 그때 당시 참수에 흔히 쓰이던 도끼 대신 잘 드는 칼을 사용하기로 결정되었고 왕은 앤의 참수를 위해 프랑스에서 칼을 쓰는 노련한 사람을 특별히 고용했다.
58번째 줄:
}}
 
{{Authority전거 control통제}}
{{기본정렬:불린, 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