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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봉'''(鄭寅鳳, [[1953년]] [[12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당선무효되었다.
 
 
 
◎‘법정악연’서 ‘평생지기“로/80년 「시국굴레」서 꽃핀 두 지식인의 우정/정씨 “어쩔수 없이 중형 구형” 늘 마음빚/변호사로 번 1억쾌척 출판사 차려줘/송씨,무료변론등 진실에 감동 “모든게 내탓”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과 연루된 소설가에게 중형을 구형한 검사가 10여년이 지난 지금 변호사 생활을 하며 모은 거액을 내놓아 그를 출판사 사장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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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며 소설가인 공안사범에게 옥고의 굴레를 씌운 현직 변호사는 피할 수 없었던 정치적 상황을 남의 탓으로 돌리기에 앞서 그때 지녔던 정신적 부채를 떨치지 못해 출판사를 맡겼다.
또 이 소설가는 그가 지난 10여년동안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에 끌려 받아들이기 힘든 제의를 뿌리치지 못했다.
 
1991년 1월초 서울시 잠원동에서 개업식을 가진 이들은 이제부턴 서로에게 진 빚을 갚기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주위에 흐뭇한 감동을 주고 있다.
정인봉 변호사(38)와 소설가 송기원씨(44·한신대 강사). 이 두사람의 첫 만남은 지난
 
정인봉의 형 정인승은 교내시위후 강제징집됐다가 사망했다. 1980년 8월 군법무관이던 정인봉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구속기소된 소설가 송기원의 사건심리를 맡으면서 1974년 여러 일간지 신춘문예에서 시·소설부문에서 수상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지기도 했던 소설가 송기원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이 일에 대해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직접 수사한 것도 아니고 위에서 시키는 대로 공소장을 읽었을 뿐이라고 해도 그때 그 자리를 박차지 못했던 것은 모두 내탓이지요』라고 말했다. 1980년 10월 군제대와 함께 판사를 하면서 7년동안의 지방근무와 해외연수를 마치고 변호사 개업했다. 과거의 부채감 때문에 각종 시국사건에서 무료변론을 하고 송기원이 운영하는 들꽃세상 출판사를 위해 변호사를 하며 모은 1억여원을 지원해줬다.<ref>국민일보 10년전 검사·피의자로 만난 정인봉·송기원씨(주말화제)[문화>출판 | 문화>방송_연예 | 사회] 1991-03-16 / 이경욱</ref>
 
 
== 경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