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라이비츠 방송국 공격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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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livice radio tower.JPG|thumb|현재의 [[글라이비츠 라디오 타워]]. 이 건축물은 유럽에서 목재로 만들어진 가장 높은 건물이다.]]
'''글라이비츠(Gleiwitz) 방송국 공격사건'''은 [[나치 독일|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허울좋은 명분을 만들기 위해 [[1939년]] [[8월 31일]]에 독일-폴란드 국경 지대에 위치한 [[글리비체|글라이비츠]] 방송국을 공격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SS제국지도자]] [[하인리히 힘러]](Heinrich Himmler)의 명령을 받은 [[국가보안본부|국가보안본부]](RSHA)]] 장관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Reinhard Heidrich)가 [[알프레트 나우요크스|알프레트 헬무트 나우요크스]](Alfred Naujocks) SS소령에게 지시하여 벌인 [[자작극]]으로서, 사건의 전말은 전쟁 기간 내내 묻혀 있다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드러났다.
 
글라이비츠(Gleiwitz)는 현재 폴란드령으로 이름도 폴란드식으로 개명되어 [[글리비체]](Gliwice)로 불리고 있다. 이 도시는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간의 [[오스트리아 계승전쟁]] 결과 프로이센이 승리하여 획득하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때까지 독일령이었다. 연합국의 [[얄타 회담]]에 따라 전후 독일 동부의 [[오데르 강]]과 [[나이세 강]] 동부를 폴란드에 할양하면서 이 도시는 다시 폴란드령이 된 것이다.
 
== 배경 ==
[[1939년]] [[5월 23일]], 군 최고 지휘부를 소집한 회의에서 폴란드 공격을 지시한 [[아돌프 히틀러|히틀러]] 총통은 폴란드가 먼저 도발하여 전쟁을 하게 된 것으로 주장할 명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히틀러는 이 공작을 힘러에게 맡기기로 했다.
 
계획은 힘러가 고안해내고, 실행은 하이드리히가 맡았다. 하이드리히는 이 임무를 SS소령 알프레트 나우요크스에게 맡긴다. 두 사람은 [[1931년]]에 [[킬]]에서 서로 알게 되었으며, 먼저 [[친위대 (나치)|SS]]에 입대한 하이드리히가 그도 SS로 끌어들였고, [[1934년]]에는 그가 맡고 있던 [[SS보안방첩부|SD]]로 나우요크스를 끌어들였다. 작전이 계획될 무렵, 나우요크스는 [[베를린]] 델부르크가에서 ‘그룹 F’라고 불린 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이 그룹은 외국에서 근무하는 SD 첩보원들에게 필요한 위조 증명서, 통행증, 가짜 여권 등을 만들어내던 그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