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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위 고황제 조등'''(曹魏 高皇帝 曹騰, ? ~ [[159년]])은 [[후한]] 말기의 [[환관]]으로, 자는 계흥이다. [[위 (삼국 시대)|위]] 무제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의 양아버지이다. 《[[삼국지]]》에 따르면, 조등은 [[전한]] 때 [[상국]](相國)을 지낸 [[조참]]의 후예이고, 조등의 아버지는 [[조절 (원위)|조절]]이다. 그러나 《[[후한서]]》〈조등전〉에는 이와 관련된 기록이 없다는 것을 근거로, 조참후예설을 윤색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ref>이공범, 《위진남북조사》, 지식산업사(2003년 09월 15일), 1.1.1. 조조의 등장</ref> 〈원소전〉에 따르면, 조등은 탐욕스러워 재화를 긁어모았다고 한다.
 
[[중상시]](中常侍)와 [[대장추]](大長秋)를 지냈으며, 후에는 비정후(費亭候)에 봉해졌다. 당시 환관과 [[외척]]이 세를 다투며 권력을 찬탈하여 행사하던 시기였는데, 조등도 이 대열에 들어가 상당한 권력을 얻었다. 그의 양자의 아들은양자 [[조숭]]으로, 후일 [[위 (삼국)|위]]를 세우는 조조의 아버지가 된다.
 
[[229년]], 고손자 [[조예]]가 고황제(高皇帝)로 추증하였다. 이로 인하여 내시로서는 유일하게 중국의 황제 명단에 포함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