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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407년]] 유발발은 옛 철불부[[철불흉노]] 및 선비의 여러 부족을 규합하여 후진에게서 독립하고 대선우 대하천왕(大單于 大夏天王)이라 자칭하여 하나라를 건국하였다. 하나라는 오르도스 전역을 평정하였으며, [[413년]]에는 본래 흉노의 성씨인 [[혁련씨]]로 성을 바꾸고 통만성(統萬城)을 축성하며 세력을 키웠다. 당시 중원의 강국이었던 북위에 대항하기 위해 [[414년]]에는 [[북연]](北燕)과 동맹을 맺고 북위를 공격하여 [[415년]]까지 [[산서성|산서]](山西) 일대를 점령하였다. 한편 [[415년]]에는 [[북량]](北凉)과 동맹하여 후진 및 [[서진 (오호십육국)|서진]](西秦)과 대립하였다. [[417년]], 관중(關中)의 후진이 [[동진]](東晉)의 [[유유 (송)|유유]](劉裕)에 의해 멸망당하자, 하나라 군은 남하하여 동진의 후방 수비대를 격파하고 [[418년]], [[장안]](長安) 등 관중의 여러 성을 점령했다. 혁련발발은 제위에 올라 통만성을 수도로 하고, 장안을 남도(南都)로 정하였으며 [[419년]]에 진흥(眞興)이라 개원하였다. 하나라의 영역은 관중, 오르도스, 산서 남부에 이르렀고, [[토욕혼]](吐谷渾), 북량(北凉)을 복속시켜, 화북 서쪽에서 대세력을 구축하였다. [[424년]] 혁련발발은 장안에의 병력을 지휘하고 있던 차남 황태자 혁련괴(赫連璝)를 폐하고 사남 혁련윤(赫連倫)을 태자로 삼았다. 이에 혁련괴는 장안에서 반란을 일으켜 통만성을 공격하였다. 혁련괴는 혁련윤을 살해하였으나 삼남 [[혁련창]](赫連昌)에게 패하여 죽었으며 이에 혁련발발은 혁련창을 태자로 삼았다. [[425년]] 혁련발발이 죽고 혁련창이 즉위하였다.
=== 철불부 ===
흉노가 남북으로 분열된 이래 남흉노의 철불부(鐵弗部)는 [[오르도스]]에서 일대 세력을 구축하였다. 철불부의 선조는 [[삼국 시대 (중국)|삼국 시대]] 흉노의 [[선우]]였던 [[어부라]](於夫羅)의 조카뻘인 철불 우현왕(右賢王) [[거비]](去卑)로 [[조조]](曹操)의 신임을 받아 남흉노를 관할하였으며 한나라의 유씨(劉氏) 성을 사용하였다. [[310년]], 거비의 손자 유호(劉虎)가 [[선비족]](鮮卑族) [[탁발부]](拓跋部)에게 본거지인 산서 일대를 빼앗기고 오르도스 지방으로 옮겨와 할거하면서 [[전조 (오호십육국)|전조]](前趙), [[후조]](後趙), [[전진 (오호십육국)|전진]](前秦)에게 차례로 협력하였다. 유호의 손자 유위진(劉衛辰)의 대에 다시 탁발부에 패하여 오르도스를 상실하고 전진의 영내로 이주하였다. [[376년]], 유위진은 전진의 탁발부 토벌에 종군하여 공을 세우고 오르도스로 다시 이주하였으며 탁발부, [[유연 (나라)|유연]](柔然)을 복속시켰다.
 
[[386년]], 탁발부가 다시 성장하여 대(代 ; 후에 [[북위 (북조)|북위]]{北魏}로 국호를 바꿈)를 건국하고 [[391년]]에 북위의 원정군에 유위해가 살해당하면서 철불부는 일시적으로 멸망하였다. 유위진의 아들 유발발(劉勃勃)은 오르도스 서남쪽의 고평(高平)까지 도망쳤으나, 그 후에도 북위의 토벌군이 여러차례 공격해 와 유랑 끝에 [[후진 (오호십육국)|후진]](後秦)에 몸을 의탁하였다. 후진은 북위의 침입을 막기 위해 유발발을 오르도스에 배치하였다.
 
=== 하 ===
[[407년]] 유발발은 옛 철불부 및 선비의 여러 부족을 규합하여 후진에게서 독립하고 대선우 대하천왕(大單于 大夏天王)이라 자칭하여 하나라를 건국하였다. 하나라는 오르도스 전역을 평정하였으며, [[413년]]에는 본래 흉노의 성씨인 [[혁련씨]]로 성을 바꾸고 통만성(統萬城)을 축성하며 세력을 키웠다. 당시 중원의 강국이었던 북위에 대항하기 위해 [[414년]]에는 [[북연]](北燕)과 동맹을 맺고 북위를 공격하여 [[415년]]까지 [[산서성|산서]](山西) 일대를 점령하였다. 한편 [[415년]]에는 [[북량]](北凉)과 동맹하여 후진 및 [[서진 (오호십육국)|서진]](西秦)과 대립하였다. [[417년]], 관중(關中)의 후진이 [[동진]](東晉)의 [[유유 (송)|유유]](劉裕)에 의해 멸망당하자, 하나라 군은 남하하여 동진의 후방 수비대를 격파하고 [[418년]], [[장안]](長安) 등 관중의 여러 성을 점령했다. 혁련발발은 제위에 올라 통만성을 수도로 하고, 장안을 남도(南都)로 정하였으며 [[419년]]에 진흥(眞興)이라 개원하였다. 하나라의 영역은 관중, 오르도스, 산서 남부에 이르렀고, [[토욕혼]](吐谷渾), 북량(北凉)을 복속시켜, 화북 서쪽에서 대세력을 구축하였다. [[424년]] 혁련발발은 장안에의 병력을 지휘하고 있던 차남 황태자 혁련괴(赫連璝)를 폐하고 사남 혁련윤(赫連倫)을 태자로 삼았다. 이에 혁련괴는 장안에서 반란을 일으켜 통만성을 공격하였다. 혁련괴는 혁련윤을 살해하였으나 삼남 [[혁련창]](赫連昌)에게 패하여 죽었으며 이에 혁련발발은 혁련창을 태자로 삼았다. [[425년]] 혁련발발이 죽고 혁련창이 즉위하였다.
 
[[426년]], 혁련창은 서진을 공격하여 수도 포한(枹罕)을 함락하고 서평(西平)까지 진격하였으나, 본국이 비어있는 틈을 타 쳐들어온 북위에게 관중의 여러 성을 빼앗겼다. [[427년]]에는 북위의 2차 원정군이 수도 통만성을 함락시켰다. 혁련창은 통만성을 탈출해 안정(安定)을 수도로 삼아 저항을 계속했으나, 각지에서 북위에게 패배하였으며 [[428년]] 혁련창은 북위군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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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군주 ==
{{참고|선우}}
 
=== 철불부 군주 목록 ===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철불부 군주 목록'''
|-
|대수 || 성명 || 재위기간
|-align="center"
| 제1대 || [[혁련거비]](赫連去卑) || 미상
|-
| 제2대 || [[혁련고승원]](赫連誥升爰) || [[272년]] ~ [[309년]]
|-
| 제3대 || [[혁련호]](赫連虎) || [[309년]] ~ [[341년]]
|-
| 제4대 || [[혁련무항]](赫連務恒) || [[341년]] ~ [[356년]]
|-
| 제5대 || [[혁련알루두]](赫連閼陋頭) || [[356년]] ~ [[358년]]
|-
| 제6대 || [[혁련실물기]](赫連悉勿祈) || [[358년]] ~ [[359년]]
|-
| 제7대 || [[혁련위진]](赫連衛辰) || [[359년]] ~ [[391년]]
|-
|}
 
=== 하나라 군주 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