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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극감'''(李克堪, [[1417년1427년]]~[[1465년]])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본관은 광주(廣州).호는 이봉(二峯)이고 시호는 문경(文景).
 
본관은 광주이며 한양 교동(校洞)에서 태어났다. 자는 덕여(德輿)이고 호는 이봉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문과]]에 급제한 뒤, [[집현전]]에 들어갔다.<ref name="han"> http://weekly.hankooki.com/lpage/nation/200607/wk2006072016114637070.htm </ref> 이어 [[문과]] 중시(重試)에 합격하여 승진, [[부수찬]]이 되었고 [[세자시강원]]에 들어가 [[세자]](예종)를 가르쳤다. 이극감보다 열 살이 많았던 세조는 경우에 따라서는 군신 관계를 떠나 친구로 그를 대하였으며 순탄치 않은 과정으로 [[세조]]는 장자를 잃고 차남(후일의 예종)이 세자가 되자 세자의 교육을 그에게 맡겼다. 세조는 개인적으로도 국가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면 이극감을 찾아 임무를 부여하고 신뢰하였다. [[1461년]] 세조는 "내가 세자를 너에게 부탁하니 네가 잘 보필하면 나는 걱정이 없겠다"고 했고 이듬해에는 "경은 세자의 스승이라 내가 믿고 중시하는 바이다"라 했을 정로도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는 [[도승지]], 이조참판을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부모 상을 연이어 당하고 [[1465년]] 38세에 형조판서에 임명됐으나 같은 해 세상을 떠났다.<ref name="han"/>
== 사후 ==
사후 2년 뒤인 [[1467년]] [[좌익공신]] 3등으로 [[광성군]](廣城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경(文景).<ref name="han"/>
 
== 평가 ==
그는 총명함이 남달라 한번본 내용은 모두 기억했다 하며 깨끗한 처세로 명성이 높았다. 한 번도 술을 가지고 손님을 접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집에서 술을 담그지도 않았다고 한다.<ref name="han"/>
 
== 가족 ==
* 증조부 : [[이집]](李集, [[1327년]] ~ [[1387년]]), 호는 둔촌
* 조부 : 이지직(李之直)
* 부 : [[이인손]](李仁孫)
* 아들 : [[이세좌]], 갑자사화로 화를 입었다.
* 동생 : [[이극돈]]
* 동생 : [[이극균]]
 
== 주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