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10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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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 =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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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Christian X.jpg|thumb|250px|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에 크리스티안 10세 국왕은 매일 코펜하겐 시가지에서 말을 타고 다녔기 때문에 덴마크의 왕권을 상징하는 인물로 여겨졌다. 사진은 1940년에 열린 70번째 생일 행사 과정에서 촬영되었다.]]
 
'''크리스티안 10세'''(Christian X, [[1870년]] [[9월 26일]] ~ [[1947년]] [[4월 20일]])는 [[글뤽스부르크 왕가]]의 [[덴마크의 군주|덴마크의 국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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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 과정 ===
1870년에 [[코펜하겐]] 근처의 샤를 보성에서 태어났다. 1912년에 덴마크와 아이슬란드의 국왕으로 즉위한다.
 
=== 1920년 부활절 위기 ===
크리스티안 10세는 즉위 후 독일에게 빼앗겼던 술레스비히 지방을 되찾기 위해 노력해서 결국1차대전의 패배로 불리한 입장에 서 있던 독일에게서 주민투표를 통해 북 슐레스비히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투표 결과 남부 슐레스비히는 독일에 계속 남기로 했다. 이에 덴마크 민족주의자들은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남부 슐레스비히도 덴마크에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크리스티안 10세 또한 이에 동조하며 수상 칼 테오도르 잘레(1866~1946)에게 슐레스비히의 통합을 명령했다. 그러나 잘레는 왕명에 따르지 않고 북부 슐레스비히만 통합한 후 자신은 수상직에서 사임했다. 크리스티안 10세는 이에 격분한 나머지 내각을 해산하고 보수파로 내각을 새로 구성해 남부 슐레스비히를 통합하려 했지만 내각 해산은 국민적인 반발로 이어졌고 이에 굴복한 그는 보수파 내각을 해산시킨 후 내각을 재구성했다. 이후 왕의 권력은 크게 약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