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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3년]] 자신의 조카였던 [[크리스티안 2세]]가 퇴위하면서 [[슐레스비히]] 공작, [[홀슈타인]] 공작으로 임명되었다. [[1526년]]에는 슐레스비히 총독, 홀슈타인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1529년]]에는 [[노르웨이]]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왕세자 시절에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 [[루터교]]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1525년]] [[10월 29일]]에는 작센라우엔부르크(Sachsen-Lauenburg)의 도로테아(Dorothea)와 결혼했고 슬하의 5명의 자녀를 두었다.
 
[[1533년]] 자신의 아버지였던 프레데리크 2세가 사망했으며 [[1534년]]에는 [[윌란 반도]] 동부에 위치한 도시인 뤼에(Rye) 의회에서 덴마크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렇지만 덴마크 의회는 [[로마 가톨릭교회]] 주교와 귀족들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덴마크의 국왕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크리스티안 2세의 복위를 주장한 [[올덴부르크]]의 크리스토페르(ChristopherChristoffer) 백작을 지지했다.
 
[[1534년]]부터 [[1536년]]까지 덴마크에서는 2년 동안 [[개신교]] 세력과 로마 가톨릭교회 세력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인 [[백작 전쟁]]이 일어났다. 1534년 덴마크의 상인인 스키페르 클레멘트(Skipper Clement)가 이끄는 농민들이 윌란 반도 북부에서 반란을 일으켰지만 약 3,000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내면서 진압되었다. 1536년 7월 올덴부르크의 크리스토페르 백작이 이끄는 군대가 크리스티안 3세가 이끄는 군대에 항복을 선언하면서 백작 전쟁은 종식되었고 크리스티안 3세는 덴마크의 왕위를 확고히 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덴마크에서는 로마 가톨릭교회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