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지 스 포데브라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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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왕 즉위: 루이 11세의 거부 추가
→‎국왕 즉위: 바오로 2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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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지는 이 조약이 [[1464년]]에 발효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로마와의 화해를 위해 노력하던 이르지의 구상은 좌절되고 만다. 먼저 프랑스의 [[루이 11세]]가 교황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이를 거부하자 다른 군주들도 이에 동조하였다. 1464년 보헤미아에 대항하는 십자군을 구상하던 교황 비오 2세가 사망하고 [[교황 바오로 2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르지는 교황 바오로 2세와의 평화 협상을 시도했지만 새 교황도 자신을 적대시하고 있었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이르지는 교황파 출신 귀족들을 자신의 적으로 만들었다. [[1465년]] [[11월 28일]] 교황파 출신 귀족들은 젤레나호라(Zelená Hora)에서 이르지 국왕에 대항하는 동맹을 결성했다. 이 동맹은 결성 당시부터 [[교황 바오로 2세의2세]]의 지지를 받았다. [[1466년]] [[12월 23일]] [[교황 바오로 2세는2세]]는 이르지 국왕을 [[파문]]시키고하고 보헤미아의 국왕에서 폐위되었음을 선언했다. 과거 이르지와 동맹 관계를 맺었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3세, 헝가리의 국왕인 [[마차시 1세]]가 보헤미아 귀족들의 반란에 가세했다. 마차시 1세는 [[모라바]]의 대부분을 정복했고 [[1469년]] [[5월 3일]] [[올로모우츠]]에서 보헤미아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1470년]] 이르지는 자신을 지지하던 세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헝가리의 국왕 마차시 1세와 휴전 협정을 체결했으며 [[1471년]] [[3월 22일]]에 사망했다. 그의 지지자들은 [[폴란드]]의 국왕이었던 [[카지미에시 4세]]의 아들인 [[울라슬로 2세]](블라디슬라프 2세)를 보헤미아의 국왕으로 선출하면서 마차시 1세와의 전쟁을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