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타르 스바치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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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고위층 인사들과 성직자들은 헝가리의 라슬로 1세의 국왕의 주장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헝가리 군대의 공격으로부터 크로아티아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군대를 배치하는 한편 크로아티아의 귀족인 페타르 스바치치를 크로아티아의 국왕으로 추대했다. 그렇지만 2년 전부터 군사 작전을 구상했던 헝가리의 라슬로 1세 국왕은 [[드라바 강]]을 따라 크로아티아 국경을 돌파했다. 헝가리 군대는 [[슬라보니아]] 전체 지역을 점령했지만 그보즈드 산(Gvozd)에 있던 크로아티아 군대에 의해 저지당하고 만다.
[[1095년]] 라슬로 1세가 사망한 이후에
헝가리의 칼만 국왕은 크로아티아에 남아 있던 귀족들과 함께 5년 동안에 걸친 협상을 진행했다. [[1102년]]에는 크로아티아인들이 칼만을 크로아티아의 국왕으로 인정하기로 결정했다. 칼만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크로아티아를 헝가리인들과의 합의가 아닌 정부 수반의 자치를 통해 모든 권리를 보장하고 이를 존중하기로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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