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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이탈리아]] 영토에 대한 종주권 요구를 넘어 이탈리아를 회복해야 할 실지로 여겼다. [[랑고바르드 왕국]]의 군주들은 [[774년]] 멸망할 때까지 형식적이나마 [[콘스탄티노플]]로 조공을 바쳤다. 그러나 [[774년]]에 [[랑고바르드 왕국]]을 점령한 [[프랑크 왕국]]의 왕 [[샤를마뉴]]는 [[800년]] [[12월 25일]] [[교황 레오 3세]]로부터 서로마 황제의 제관을 받았다. 로마의 황제들은 로마 교황을 신하로 보고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로마 황제들의 지시, 감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로마 [[교황 레오 3세]]는 [[프랑크 족]]의 군주 [[샤를마뉴]]에게 황제관을 씌웠다.
 
로마 황실에서는 [[샤를마뉴]]의 서로마 황제 제관 수여에 민감하게 대응하였고 [[샤를마뉴]]를 찬탈자, 가짜 황제로 규정하고 반발하였다. 서로마 황제로 인정하는 것은 거부하되, 프랑크 족의 영토와 군사력을 묵살할 수는 없어 황제임은 일단 인정했다. 공식 문서에서 로마 제국은 샤를마뉴를 서로마 황제나 로마 황제가 아닌 프랑크인의 황제, 프랑크 황제라고 지칭하였다. [[810년]]대에 와서 샤를마뉴의 딸 중 한명과 [[콘스탄티누스 6세]] 사이의 결혼 동맹이 체결되기 전까지 로마에서는 프랑크 족 출신 군주를 로마 황제로 승인하기를 거절하였다. [[샤를마뉴]]가 죽은 뒤에 다시 로마의 군주들은 그 후계자인 [[루트비히 1세 (경건왕)|경건왕 루트비히]]나 [[루트비히 2세 (이탈리아)|이탈리아인 루트비히]]를 칭할 때 렉스 또는 레기움이라 칭하여 황제 지위 인정을 거부하였다. [[962년]] [[독일 왕국]]의 [[오토 1세 (신성 로마 제국)|오토 1세]]가 [[이탈리아]] 원정 후 [[신성 로마 제국]] 황제관을 수여받았을 때에도 역시 로마 제국은 민감하게 대응하였다.
 
=== 마케도니아 황조와 제국의 최전성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