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백 (1931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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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 평화의댐 사건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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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화 ==
이기백은 [[아웅 산 묘역 폭탄테러사건]] 당시 [[합동참모본부]] 의장의 자격으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수행하여 아웅산 묘소를 참배하러 갔다. 그런데 이때 아웅 산 묘역 폭탄테러사건이 발생하자 피해를 입었지만 사건 당시 전속부관이었던 [[전인범]] 중위의 신속한 응급조치로 인하여 18명의 장·차관들 중 유일하게 생존했다. 이 사고를 당한 이기백은 귀국 후 자신의 모교인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에 이 당시 입고있던 정복을 기증하였으며 현재도 이 정복은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대국민 사기극 평화의 댐 건설의 주역이다. 1986년 북한이 추진하던 금강산댐의 위협을 과대 포장했다. 이규호 건설부 장관은 1986년10월말 무시무시한 특별 담화를 내놓았다. ‘북한이 200억t의 담수용량을 가진 금강산댐(임남댐)을 건설 중이며 댐이 무너지면 63빌딩 중턱까지 물이 차오르게 될 것이다.’ 주요 신문들의 ‘물의 남침’, ‘서울 전역 침수’ 등 보도에 국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결정적으로 이기백 국방부 장관의 “200억t 물로 수공작전을 전개하면 그 위력이 핵무기보다 크다.”는 발표가 국민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http://v.media.daum.net/v/20170228040005356]
 
== 학력 ==
 
* 1950년 : [[충청남도]] [[한밭대학교|대전고등공업학교]](現 [[한밭대학교]]) 졸업
* 1955년 :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졸업 (제11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