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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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언'''(1942년 ~)은 [[서울특별시]] 출신으로 [[보성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최연소자로 제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에 임용된 이후 헌법재판관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서울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로 재직할 때 [[박종철]] 고문치사 의혹 사건 수사팀장을 맡았고 이후 [[서울지방검찰청]] 2차장, 법무부 법무과장,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공판 송무부장, 법무부 법무실장, 대검찰청 21세기 기획단 초대 단장을 거쳐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에 재직하고 있을 때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은폐 조'''진조작사건<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52200209201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5-22&officeId=00020&pageNo=1&printNo=20194&publishType=00020 효종동아일보 목황제1987년 사마담'''(晉5월 孝宗22일자]</ref>의 穆皇帝수사 司馬聃,검사였다"는 [[343년]]이유를 ~들어 [[361년]])은반대하는 [[중국]]목소리가 있었음에도 [[동진민자당]]의 제5대추천으로 황제(재위:1994년 9월 15일 [[344년헌법재판관]] ~임명되어 임기 6년을 마친 2000년 9월 14일에 공직에서 물러났다.<ref>[[361년]])이다http://www.nocutnews.co.kr/news/4909493]</ref><ref>동아일보 자는1994년 팽자(彭子)이다.9월 14일자 경향신문 1994년 9월 14일자</ref>
 
== 생애 ==
[[343년]]에 [[동진 강제|강제]]와 저산자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344년]] 8월에 강제의 병세가 위급하자 여러 대신들은 [[동진 성제|성제]]의 맏아들인 낭야왕 [[동진 애제|사마비]]를 맞이하여 세울 것을 청했으나 강제와 황후, 태후가 탐탁치 않아 하여 취소했다. 이에 중서감 유빙과 정서장군 유익 형제는 사도인 회계왕 사마욱을 후사로 세우자고 했으나 중서감 하충은 겨우 2살 밖에 안되는 사마담을 태자로 봉하자고 했는데 왠지 강제는 어린 아들을 태자로 봉했다. 9월에 강제가 사망하자 황제가 되었는데 저태후가 섭정하고 하충이 보좌했다. 하충은 재능과 식견이 있고 도량이 넓으며 친족이나 지인을 사사로이 돌보지 않고 나라를 잘 다스렸다. [[346년]] 정월에 하충이 죽고 좌광록대부 채모와 사도인 회계왕 사마욱이 정사를 보좌했다.
 
이 때는 중원 지역이 혼란에 빠져 [[후조]]와 [[염위]]가 나란히 멸망하고 [[전진]]과 [[전연]]이 일어났다. 이 틈을 타서 [[환온]]은 큰 공을 세우고 제위를 차지하려고 북벌을 감행했는데 [[347년]]에 촉 땅의 [[성한]]을 쳤다. 환온은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결국 성한을 멸망시키고 후주 [[이세]]를 사로잡았으며 서촉 지방을 수복했다. [[354년]]에는 전진을 쳐서 낙양을 함락시키고 평승루에 올랐다. 이어서 강주자사 사마훈과 함께 장안을 수복하기 위해 관중을 쳤는데 [[위연]]이 제안했다는 자오곡 계책을 그대로 활용했다가 보급로가 끊겨 철수했다. 사실 환온은 장안을 함락시킬 수도 있었으나 개인 의지 부족으로 시일을 끌었다. 이후 환온은 낙양을 영구히 영토로 지키기 위해 목제에게 낙양으로 환도하자고 했지만 목제의 무관심과 강남에 뿌리를 박은 사대부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철수한다. 그 외에도 정북대장군 저곤, 중군장군 은호 등도 북벌에 뛰어들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일단 그들의 능력은 장군이라기에는 너무나 부족했고 오히려 청담가에 가까웠으며 국고가 비었고 치밀한 계획도 없었다.
 
성인이 되자 정권을 잡고 있던 사도 사마욱이 정사를 돌려주었지만 목제는 이를 거절했다.
 
[[361년]] 5월에 재위 18년 만에 19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7월에 영평릉(永平陵)에 안장되었다.
 
{{전임후임
|전임자=[[동진 강제|강제 사마악]]
|후임자=[[동진 애제|애제 사마비]]
|임기=[[344년]] ~ [[361년]]
|직책=[[동진]]의 황제
|대수=5
|앞이름=전 임
|뒤이름=후 임
}}
{{진나라의 역대 황제}}
{{기본정렬:목제, 동진}}
 
[[분류:343년 태어남]]
[[분류:361년 죽음]]
[[분류:동진의 황제]]
[[분류:4세기 중국 사람]]
작사건<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52200209201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5-22&officeId=00020&pageNo=1&printNo=20194&publishType=00020 동아일보 1987년 5월 22일자]</ref>의 수사 검사였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민자당]]의 추천으로 1994년 9월 15일 [[헌법재판관]]에 임명되어 임기 6년을 마친 2000년 9월 14일에 공직에서 물러났다.<ref>[http://www.nocutnews.co.kr/news/4909493]</ref><ref>동아일보 1994년 9월 14일자 경향신문 1994년 9월 14일자</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