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 폰 외스터라이히웅가른 황태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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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프란츠 카를 요제프 외스터라이히웅가른 황태자''' ({{llang|de|Rudolf Franz Karl Joseph Kronprinz von Österreich-Ungarn}}, [[1858년]] [[8월 21일]] ~ [[1889년]] [[1월 30일]])는 [[프란츠 요제프 1세|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황후 엘리자베트]]의 유일한 아들로, 태어나자마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가 되었다. 누나 [[오스트리아 여대공 소피|소피]]와 [[오스트리아 여대공 기젤라|기젤라]], 여동생 [[오스트리아 여대공 마리 발레리|마리 발레리]]가 있었으나 그 중 소피는 2살 때 열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는 정치적인 노선이 다른 아버지와 대립했으며, 모후는 그에게 신경을 별로 쓰지 않게 되어 성격이 병들어갔고, 결국 사냥용 별장인 [[마이얼링]]에서 남작의 딸인 [[마리아마리 폰 베체라]]와 동반자살하였다동반 자살하였다.
 
== 유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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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
루돌프는 사촌<ref>어머니 엘리자베트의 큰오빠 루트비히가 귀천결혼으로 얻은 딸</ref> 리리슈마리 백작라리슈 부인에게서백작부인에게서 남작의 딸 마리아마리 폰 베체라를 소개받았다. 그 무렵 루돌프는 이미 죽음에 깊이 심취해 있었고 자살하려는 욕구에 사로잡혀 있었다. 루돌프는 1889년 1월 말 [[빈]]에서 남서쪽으로 24km 가량 떨어진 황실 사냥용 별장 마이얼링에 갔다. 루돌프는 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 어머니와 누이동생,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1월 29일, 루돌프는 시종에게 "설사 황제가 오신다 해도" 자신의 수면을 방해하지 말라고 당부했고 시종은 다음날 아침 7시 30분경 시종은 루돌프의 침실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8시에 루돌프의 친구가 찾아와서 문을 두드렸지만 대답이 없자 문을 부쉈고 방 안에서 루돌프와 마리아의 시체를 발견했다. 황실은 루돌프가 병으로 죽었다고 발표했고 마리아의 어머니는 그로부터 20일이 지나고 나서야 딸의 죽음을 알았다.<ref>마르탱 모네스티에, 《자살백과》, 한명희 이시진 역, p.124, 새움, ISBN 978-89-88537-94-7</ref> 1월 31일, 황실은 루돌프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사실을 공식화했고 루돌프의 사인은 자살이었지만 바티칸은 그가 정신병을 앓고 있었다는 이유로 장례를 치르는 것을 허가해 주었다. <ref>모네스티에, p.125</ref> 황제는 루돌프와 마리아를 만나게 해준 리리슈 백작 부인의 황궁 출입을 영원히 금지했다.<ref>타임라이프 북스, 《제국의 종말》 김훈 역, 가람기획, 2005, ISBN 978-89-8435-190-5</ref>
 
== 루돌프 황태자를 다룬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