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제2제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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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도르 스베토슬라프는 분열된 불가리아를 다시 통일하여 무너져가는 제국의 중흥기를 열었다. 토도르 스베토슬라프는 비잔티움 제국의 내정 간섭을 막고 귀족들과 고위 성직자들의 반항을 억제하면서 중앙 집권화에 성공하였다. 토도르 스베토슬라프는 자신을 도와주었던 터르노보의 총주교 요아킴 3세를 배신죄를 씌워 처형하였고, 크런 지방에서 독자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게오르기 테르테르 1세의 동생이자 그의 삼촌인 알디미르가 비잔티움 제국과 동맹을 맺어 그에게 대항하자 싸워서 죽였다. 토도르 스베토슬라프는 비잔티움 제국에 대해 공세를 취하여 북부 트라키아와 흑해 연안 지역을 회복하였고, [[1308년]] 비잔티움 제국과 화약을 맺어 이를 인정받았다. 세르비아와는 반 비잔티움 동맹을 맺어 관계가 개선되었고, [[1321년]] 비잔티움 제국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토도르 스베토슬라프는 [[안드로니코스 3세]]의 편을 들어 영토 확장을 도모하기도 하였다.
 
14세기 초 몽골군이 철수하면서 유럽에는 안정이 찾아왔고, 불가리아 및 발칸 국가들도 현재의 국경과 비슷한 영역을 형성하였다. 하지만 헝가리와 세르비아의 성장으로 다시금 전운이 감돌기 시작하였다. [[1322년]] 토도르 스베토슬라프가 사망하고 뒤를 이어 즉위한 그의 아들 게오르기 테르테르 2세는 [[1323년]] 비잔티움 제국을 침공하여 아드리아노폴리스로 진격하던 도중 급사하고, 이반 아센 2세의 외손녀와 비딘의 데스포트 시슈만 사이의 아들인 [[미하일 아센 3세]]가 황제로 즉위하여 시슈만 왕조를 개창하였다. 미하일 3세는 스베토슬라프 대의 정책을 계승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왕위 계승 다툼에 개입하였고, 이후에도 비잔티움 제국과 전쟁을 벌였으나 세르비아의 성장으로 동맹 관계로 전환하였고, 세르비아를 침공하였다. 하지만 [[1330년]] 세르비아의 [[스테판 3세 데챤스키데찬스키]]와의 벨버즈드 전투에서 대패하여 그 자신은 전사하고 마케도니아는 분할당하였으며, 데찬스키는 미하일의 아들 이반 스테판을 꼭두각시로 내세웠다. 벨버즈드 전투의 결과로 불가리아는 스베토슬라프 대에 안정되었던 중앙 집권력에 큰 타격을 입었다. 또한 비잔티움 제국의 안드로니코스 3세는 이틈을 타서 동맹을 파기하고 흑해 연안 일대의 메셈브리아와 소조폴 일대를 차지하였다.
 
불가리아의 귀족들은 이반 스테판을 세르비아의 꼭두각시로 여겼고<ref name="주석6">ディミトロフ、イスーソフ、ショポフ『ブルガリア 1』、105頁</ref>, 결국 [[1331년]] 궁정혁명이 일어나 미하일 시슈만의 조카이자 이반 스테판의 사촌인 로베치의 데스포트 [[이반 알렉산더르]]가 즉위하여 정세는 급변하였다. 또한 세르비아에서도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이 아버지 스테판 데챤스키를데찬스키를 폐위시켰고, 두샨과 이반 알렉산더르는 발칸 반도에 남슬라브 제국을 건설하려는 같은 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화친하였다.
 
==== 이반 알렉산더르(1331~13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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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알렉산더르는 무려 40년 간 불가리아를 통치하였는데, 그의 치세는 불가리아 중세사의 전환기로 여겨진다. 그의 치세 초기 비잔티움 제국이 차지한 흑해 연안의 불가리아령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이반 알렉산더르는 다시 이 지역을 탈환하였다.<ref name="주석6" /> 이반 알렉산더르는 [[1332년]]의 루소카스트로 전투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안드로니코스 3세를 격파하였으며, 불가리아에 유리한 화약을 맺었다. 이후 자신의 즉위를 반대하면서 반란을 일으킨 미하일 시슈만의 동생이자 자신의 삼촌인 비딘의 데스포트 벨라우르를 공격하여 [[1336년]]에 진압하였다.
 
이반 알렉산더르는 세르비아의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과 협력하여 자신의 여동생 엘레나를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에게 시집보냈고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의 차르 즉위를 인정하면서 세르비아와 협력 관계를 형성하였다. 또한 [[1339년]]에는 자신의 딸인 마리아를 비잔티움 제국의 안드로니코스 3세에게 시집보내면서 비잔티움 제국과의 관계도 개선되었다. [[1345년]] 이반 알렉산더르는 왈라키아 출신 황후 테오도라와 이혼하고 [[1355년]]과 [[1356년]] 사이에는 테오도라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이반 스라치미르]]를 비딘의 데스포트로 임명하였다.<ref name="주석7">森安、今井『ブルガリア 風土と歴史』、134頁</ref> 이 시기 대외 관계는 안정되었으나, 벨버즈드 전투 이후 불가리아는 데스포트들의 할거 상태에 빠진 상태였고, 이반 알렉산더르의 치세 동안 도브루자와 왈라키아에는 반독립적인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다.
 
[[1365년]] 이반 스라치미르가 통치하는 비딘이 헝가리의 공격을 받아 [[1369년]] 이반 알렉산더르가 왈라키아 공국과 도브루자의 협력을 받아 탈환할 때까지 헝가리령이 되었다.<ref>森安、今井『ブルガリア 風土と歴史』、134-135頁</ref> [[1366년]]에서 [[1367년]] 사이에는 흑해 연안 지역이 사보이의 아마데오 4세의 침공을 받았고, 안키알로와 메셈브리아 등이 비잔티움 제국에 병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