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주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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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주 사건'''(賓州事件)은 1928년 10월 20일 만주 빈주(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 [[흑룡강성]] [[하얼빈시]] [[빈 현 (하얼빈 시)|빈현]])에서 한국 독립군 [[군사 정권|군정부]]들 중 하나인 [[신민부]]가 한국계 주민 4-50명을 살상한 사건이다.
 
신민부는 "군자금" 명목으로 재만 한인들에게 군정부에게 납부하는 "세금" 명목으로 돈을 수취해왔다. 만주로 이주해 온 한국인들은 대부분 가난했기에 중국인 지주에게 내는 지대와 신민부에게 내는 세금을 모두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신민부는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민중들을 "의단분자"라며 "보안대"를 시켜 처벌을 했다. [[영안현]]의 [[입적간민호회]] 같은 사회주의 단체는 신민부에 세금을 내지 않으며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간민호회 지도자 [[구영필]]이 일제 밀정이라는 누명을 쓰고 신민부에게 암살당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1927년 2월 일본군이 [[석두하자]]의 신민부 본부를 타격하여 [[김혁]], [[유정근]] 등이 체포되면서 신민부는 세력이 약화되었고, 향후 대책논의에 있어 무장투쟁 지속을 주장하는 군정파와 민중자치를 주장하는 민정파로 분열되었다. 군정파는 [[김좌진]]을 위원장으로 하는 지도부를 독자적으로 꾸렸고, 민정파는 민정파대로 [[고려국민당]]을 창당해 따로 놀기 시작했다. 군정파는 무장투쟁을 주장했던 만큼 세금 수취를 계속했다. 참다 못한 빈주현 주민들이 세금을 더 이상 내지 않기로 하고 신민부 보안대가 들이닥칠 경우 어떻게 자위책을 마련할 것인지 대책회의를 마련했다. 이 정보를 들은 보안대원 [[이백호]] 등 수 명이 빈주를 습격, 회의장에 총기를 난사했다. 회의 개최자 [[황혁]]을 비롯해 유연동, 김봉진 등은 즉사하고 윤필한, 김유문, 장문숙 등은 중상을 입었으며 나머지 주민들도 경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