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미어 폰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변경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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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호엔촐레른 왕가]] 중 프랑켄계의 분가인 안스바흐계의 장손으로, 선제후 [[알브레히트 2세 아킬레스]]의 손자이고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분가의 창시자인 [[프리드리히 2세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쿨름바흐)|프리드리히 2세]]와 [[폴란드]] 국왕 [[카지미에시 4세]]와 [[엘리자베스 폰 합스부르크]]의 딸인 [[폴란드의 소피아 야기에우오야기에우워]]의 10남 7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이름 카지미르는 [[폴란드어]] 카지미에시를 독일어로 바꾼 것으로 그의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1498년]] 그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2세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쿨름바흐)|프리드리히 2세]]는 여러 곳을 여행할 때 그에게 영지를 대신 통치하게 했고, 의회 의원들의 자문을 받게 했다. 그러나 아버지 [[프리드리히 2세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쿨름바흐)|프리드리히 2세]]의 호화로운 생활과 재정 파탄에 부담을 느끼자, [[헝가리]]에 체류중이던체류 중이던 동생 [[게오르크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경건자 게오르크]]와 연락하였다. [[1515년]] 카지미르는 동생 [[게오르크 폰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경건자 게오르크]]와 공모하여 쿠데타를 모의하였다. 카지미르와 게오르크는 아버지 [[프리드리히 2세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쿨름바흐)|프리드리히 2세]]를 [[팔레센부르크 성]]에 감금하고, 카지미르는 [[쿨름바흐]]를, 게오르크는 [[안스바흐]]와 [[바이에른]] 내 [[호엔촐레른 왕가]] 프랑켄계의 영토를 각각 나눠서 차지했다. 동생 게오르크가 [[폴란드]]와 [[헝가리]]를 오갈 동안 카지미르는 동생을 대신해서 그의 영지인 [[안스바흐]]를 대신 통치하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 프리드리히에 대한 쿠데타 외에도 형제들 몫의 유산에 대해 통제하려 했고, 광범위한 정치적 대책을 세웠다. 한편 아버지를 쿠데타로 몰아낸 것에 대해 다른 친척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사촌인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아힘 1세]]는 [[아우구스부르크]]로 가서 [[프리드리히 2세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쿨름바흐)|프리드리히 2세]]의 축출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고, 카지미르에게 팔레센부르크 성에 가서 진상을 밝힐 것과 프리드리히 2세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카지미르는 이를 거절했다. 영지가 없었던 그의 동생 [[알브레히트 폰 프로이센|알브레히트]]는 황제의 편에 서서 활동했고, 그의 동의를 얻어 성직자가 되었으며 추기경의 직위에도 내정되었다. 1522년 그의 또다른 형제들은 자기 몫의 영토를 요구하였는데, 그해에 가서 영토분쟁 및 아버지를 쿠데타로 몰아낸 것에 대한 친척들과의 갈등이 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