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이아 공국: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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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4년에 [[필리베르토 2세 디 사보이아|필리베르토 2세]]가 사망하자, 상당히 약한 통치자였던 [[카를로 3세 디 사보이아|선량공작 카를로 3세]]가 이어받았다. 1515년 이후로 피에몬테는 외국 군대에게 점령당하였고, [[프랑수아 1세 (프랑스)|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사보이 공국을 영구적으로 합병시킬 기회만을 엿봤고 사보이아 공국을 점령하였다. 1536년 프랑수아 1세는 강력한 군대를 보내 사보이 공국을 점령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카를로 3세는 나라가 약해졌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고, [[토리노]]를 사수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4월 3일에 함락되고 말았다. 카를로 3세는 [[베르첼리]]에서 다시 한번 반격을 시도하였지만, 사보이가 프랑스의 점령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디 사보이아 공작]] 사보이아의 장차의 정책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던 공작으로, 20년 넘게 이어진 프랑스의 점령을 끝을 내도록 하였다. [[카토캉브레지 조약]]이 1559년에 체결되면서, 공국의 모든 자치권을 회복하였다.
 
프랑스를 더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수도를 치타델라(Cittadella, 이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도시가 커져감에 따라 파괴되었다)라고 알려진 복잡한 요새화 기능을 갖춰 보다 나은 방어 시설이 있던 토리노로 천도하였다. [[플랑드르 백국|플랑드르]]에서 쌓은 군사적 경험으로,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는 어떻게 군대를 운영해야하는지를 배웠고, [[생캉탱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그는 사보이 공작 중에 처음으로 나라에 용병들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특별히 훈련된 피에몬테 출신 병사들로 이뤄진 군사 조직체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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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베르토 2세 디 사보이아|필리베르토 2세]] : 1497년–1504년
*[[카를로 3세 디 사보이아|카를로 3세]] : 1504년–53년
*[[에마누엘레 필리베르토 디 사보이아 공작]] : 1553년–80년
*[[카를로 에마누엘레 1세]] : 1580년–1630년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 디 사보이아|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 1630년–37년